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생활 속 화학제품 안전관리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 정책과 제도의 측면에서
초록
가습기살균제 참사 이후 생활화학제품 관리 주체가 변경되고 새로운 법령이 등장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발생시킨 제품관리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변화된 정책과 제도를 이행할 정부 내 조직과 인력 마련이 미흡하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겪은 사회에 걸맞는 온전한 변화가 완성되지는 못한 상황으로서, 제품안전관리시스템의 보완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Abstract
What kind of changes has Korea made since experiencing the humidifier disinfectant disaster? And are such changes enough? Based on these two questions, this article examines the changes in national policies and regulations before and after the disaster.
This study compared policies and systems before and after the disaster. Through this approach, it was evaluated whether policy improvement was successful after the disaster, and how consumer chemical product policy issues changed.
Prior to the disaster, there was a large blind spot in the management of consumer chemical products, and there was no system for managing biocidal products used in daily life. After the disaster, the government transferred the authority to manage consumer chemical products from the Ministry of Knowledge Economy to the Ministry of Environment. The Biocidal Products Law was enforced in 2019, and the blind spot in safety management of biocidal products is also being eliminated. However, because of limited manpower and insufficient budget to implement the new policy, such efforts could not make desired changes yet.
This study diagnosed that Korea's consumer chemical product policy improvement is still in progress and has rooms to improve. Securement of manpower and required budget to support the introduction of new policies and regulations are identified as urgent and essential tasks that warrant immediate attention.
Keywords:
Consumer chemical products, Humidifier disinfectant disaster, Product safety policy키워드:
생활화학제품, 가습기살균제참사, 제품안전정책Introduction
화학물질 사용량 증가 및 용도의 확대로 인해 전세계 각국에서 화학사고나 화학물질로 인한 건강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사고와 건강피해는 형태와 수준이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며 때로는 사회적 재난 또는 참사의 수준까지 초래하게 된다. 이러한 참사의 예로는 일본의 미나마타병이나 이타이이타이병, 유럽의 탈리도마이드 피해, 인도의 보팔 사고, 그리고 우리나라의 가습기살균제 피해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참사를 경험한 국가들은 국민의 불신을 극복하기 위하여 정책과 제도를 신설하거나 대폭 개선하여 더 안전한 사회로 전환을 시도하게 된다. 유럽에서 탈리도마이드 피해를 경험한 후 독일에서 연방위해평가원(BfR)을 설치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1].
이 글은 두 가지 질문에 입각하여 화학제품 안전관리에 관련한 국가 정책과 제도의 변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나라는 가습기살균제 피해라는 참사를 경험한 이후 어떠한 변화를 만들고 있을까?” 그리고 “그 변화는 참사를 경험한 나라에 찾아올 합당한 수준의 변화라고 할 수 있는가?”
이 글은 제품관리 규제에 국한하여 검토하였다는 점을 밝힌다. 참사 이후 「화학물질등록평가법」에도 중요한 변화가 등장하였으나 이 글의 주제는 아니다.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 자발적협약」이라는 거버넌스도 매우 중요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으나, 역시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다. 그리고 개별기업이나 시민의 인식과 태도 변화, 피해보상과 관련한 정책 변화 또한 다루지 않는다는 점을 밝힌다.
Definition
이 글에서는 ‘생활화학제품’과 ‘생활 속 화학제품’이라는 두 개의 용어를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Figure 1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법률상 생활화학제품과 살생물제품이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두 제품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 '생활 속 화학제품'이라는 용어를 도입하여 이 글에서 사용했다.
「화학제품안전법」 제3조에 따르면 생활화학제품이란 ‘가정, 사무실, 다중이용시설 등 일상적인 생활공간에서 사용되는 화학제품으로서 사람이나 환경에 화학물질의 노출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생활화학제품은 타부처가 관리하는 위생용품이나 의약외품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2016년 11월 29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된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 대책>에서도 생활화학제품에는 위생용품과 의약외품이 포함된다[2]. 이러한 개념은 해외에서도 유사하다. 해외에서는 「소비자제품안전법(Consumer products safety act)」을 통해 ‘소비자용 화학제품(Consumer chemical products)’을 정의한다. 예를 들어 캐나다 「소비자 화학물질 및 용기법(Consumer chemicals and containers regulation)」은 소비자용 화학제품을 ‘소비자가 사용하는 제품으로서 독성을 가진 제품’으로 정의하였고, 소화기나 가정용 연료 등을 제외한 모든 제품이 해당한다고 밝히고 있다[3].
그러나, 「화학제품안전법」 제5조는, 법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제품으로 약사법에 따른 의약외품과 위생용품관리법에 따른 위생용품 그리고 화장품법에 따른 화장품 등을 명시하고 있다. 적용제외 제품들은 생활화학제품이나 타법의 관리를 따른다고 할 수 있다. 한편 「화학제품안전법」이 살생물제품의 유예기간을 부여하고 있어 현재 안전확인대상생활화학제품에 살생물제품이 포함되어 있는데 추후 구분될 예정이다.
Scope
이 글에서 정책과 제도에 대한 참사의 영향을 고찰하는 시간범위는 2011년 8월 31일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의 역학조사결과 발표로부터 현재까지로 한다. 제도에 대한 고찰은 법률이나 고시의 개정을 중심으로 하고, 정책은 공식적인 보도자료가 나온 것으로 고찰 대상을 국한하여 주관적 평가 가능성을 최소화하였다. 한편 참사 극복에서 리스크 거버넌스(Risk governance)가 등장하는 경우는 중요한 고찰 대상이 될 수 있어, 2017년 시작된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 자발적협약(이하 “제품안전협약”)’은 간략히 살펴보고 후속 고찰 과제로 남겨두었다. 특히 제품안전협약은 2023년에 커다란 전환이 시도되고 있어 지속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본다.
Results
1. 참사 이전의 생활 속 화학제품 관리 정책과 제도
우리나라에서 생활 속 화학제품은 2011년 이전에도 공산품, 의약외품, 위생용품, 화장품 그리고 농약을 포함하고 있었다.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의약품은 화학제품으로 구분하지 않았다. 2010년 당시 각 제품별 소관부처와 법률 및 법률에 따른 정의는 다음과 같다(Table 1). 지식경제부가 관리하던 생활화학가정용품이 가장 포괄적 정의를 가지고 있다.
여러 개의 법률로 생활 속 화학제품의 관리가 나뉘어 있는 것은 행정의 발전단계에서 보면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국민과 환경 및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입법행위는 보호 대상별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즉, 관리대상 제품군의 위험을 인지한 각 부처가 제품관리의 기준을 각 법률에 신설한 것은 적극적 행정행위에 속한다. 다만 이렇게 각법이 발전하는 단계에서는 사각지대가 필수적으로 발생하며, 사각지대를 발견하거나 예측한 각 부처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정책을 조율하거나 개선하느냐에 따라 사각지대가 감소하게 된다.
2002년 12월 30일 ‘전염병의 예방을 목적으로 살균·살충 및 이와 유사한 용도로 사용되는 제제’가 의약외품에 추가되었다. 이전까지는 ‘사람의 보건을 목적으로 인체에 적용하는 모기, 진드기 등의 기피제’만 의약외품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2002년 10월 보건복지위원회 전문위원의 약사법중개정법률안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옥외에서 전염병 예방을 위해 사용되는 방역소독제중 대부분은 그 성분이 유독물에 해당되어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의하여 관리’되고 있어 품질관리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없다고 하였다. 또한 유독물이 아닌 ‘그 이외의 방역소독제는 일반공산품으로 생산되고 있어 관리의 사각지대에서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고 하였다[4].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은 화학물질을 관리하는 법률로 화학제품을 관리하지는 않기 때문에, 사각지대에 놓인 방역소독제를 약사법으로 관리하자는 적극적 입법행위가 전개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소극적으로 사각지대를 방치한 사례도 있다. 가습기살균제는 공산품으로서 생활화학가정용품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당시 소관부서인 지식경제부는 생활화학가정용품의 거대한 사각지대를 방치하였다.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에 따라 기술표준원(현 국가기술표준원)은 2007년 「자율안전확인대상공산품의 안전기준」 고시(기술표준원고시 제2007-34호)를 제정하였다. 이때 부속서7에 생활화학가정용품 안전기준이 마련되었다. 부속서 7에 따르면 ‘생활화학가정용품이란 일반 소비자들이 주로 사용할 의도의 화학제품 중에서 유해물질을 함유하고 있거나 함유할 우려가 있는 화학제품’이지만, ‘세정제, 방향제, 접착제, 광택제, 탈취제, 합성세제, 표백제 및 섬유유연제’로 제품군을 국한하였다[5]. 이러한 품목 제한행위는 관리대상 품목 외의 비관리품목이 다수 존재하는 상황을 만들게 된다. 따라서 기준 제정 이후 지속적으로 품목을 확대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졌어야 하나, 고시 제정 후 6년이 지난 2013년까지도 관리품목이 세정제, 방향제, 코팅제, 탈취제, 합성세제, 표백제 및 섬유유연제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6]. 따라서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에서는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고 평가된다.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 제11조에 따라 안전확인대상공산품의 지정 및 변경은 공산품안전심의위원회의 업무이기 때문에, 위원회 안건을 마련하는 지식경제부가 관리품목의 확대를 추진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2016년 국회 가습기살균제 특별위원회 조사과정에서 가습기살균제 제조수입사들이 기술표준원에 어떤 안전기준을 적용해야 하는지 질문하였으나, 관리품목이 아니라는 답변만 하였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하였다[7]. 생활 속 화학제품 관리가 다부처로 나뉘어져 신규제품 등장시 관리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식경제부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참사 이후 생활화학가정용품은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에서 삭제되고, 환경부 소관 법률로 관리가 이관되는 조치를 낳게 된다.
참사 이전 살생물제품이 이슈로 등장하고 있었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의약외품에서 방역용 제품을 추가지정한 것은 이슈에 적극 대응하여 정책적으로 문제를 해결한 좋은 사례이다. 하지만 이미 살생물제품이 국민의 생활 영역으로 본격적으로 진입하던 상황에서 방역용 살생물제품 관리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만약 당시에 사전예방적 관점에서 생활 속 살생물제품을 적극적으로 파악하고 관리 영역으로 가져오는 정책을 마련하였다면 가습기살균제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해외 화학안전규제 동향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이미 1999년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바이오사이드의 국내 관리방안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이 연구는 우리나라에서 바이오사이드의 개념이나 범위 설정이 미흡하고 일부만 관리되어 사각지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였다[8], 가정용 제품에서 28종의 살생물제를 확인하여 소비자에게 가해질 위해를 우려하기도 하였다[9]. 연구를 통해 문제상황을 인지하였으나 정책과 규제까지 이어지지 못했던 것은 문제상황을 인지하였음에도 환경부가 제품관리의 권한을 행사할 수 없었기 때문이며, 환경부의 연구에서 확인된 위기신호를 당시 관리부처였던 지식경제부가 무시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2. 참사 이후의 생활 속 화학제품 관리 정책과 제도
가습기살균제는 참사 이후 소관 부처가 두 번 바뀌었다. 참사 이전에는 지식경제부가 관리하는 공산품이었지만 참사 이후 식약처 소관 의약외품으로 지정되었다가 다시 환경부 소관의 위해우려제품으로 분류되었고 현재는 생활화학제품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이제는 「화학제품안전법」 유예기간 종료에 따라 살생물제품으로 분류될 것이다. 사실 이러한 변화는 가습기살균제라는 품목 수준의 변화가 아니라 제품을 관리하는 부처의 조정과 법률의 신설과 조정의 수준에서 진행되었다. Table 2에서 보듯 공산품의 생활화학가정용품 항목은 삭제되었고 생활 속 화학제품 관리의 중요한 주체였던 산업통상자원부가 환경부로 대체되었다.
의약외품, 화장품, 위생용품은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 단일화되었다. 이것은 인체와 식품 직접 적용제품은 통합관리하겠다는 2016년 정부합동 대책의 결과이다[2].
따라서, 참사 이후 정책과 제도의 구조에서 발생한 가장 큰 변화는 관리주체의 변경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1970년대 초반 미국에서 농약관리의 실패에 대한 대책으로 농약관리의 주체를 미국 환경부(US EPA)로 변경한 것과 흡사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참사 이후 환경부는 생활 속 화학제품 관리의 상당한 부분을 담당하는 조직이 되었다.
가습기살균제 사고는 관리 사각지대 때문에 발생하였다고 평가되었다[7][10][11]. 참사를 통해 제품관리의 사각지대가 드러났으므로, 참사 이후 제품 소관 부처의 변경이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환경부에서 제품을 관리한 이후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법률적 장치가 등장하였는지, 그리고 실제로 관리품목이 확대되어 사각지대가 해소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 살펴보았다.
참사에 대한 대책으로 2015년 「화학물질등록평가법」이 시행되면서, 지식경제부가 관리하던 생활화학가정용품이 환경부의 위해우려제품으로 이관된다. 「화학물질등록평가법」 제33조는 환경부장관에게 위해우려제품에 대해 제품의 품목별로 위해성평가를 실시하도록 했고, 제34조는 위해성평가 이후 품목별로 안전기준과 표시기준을 정하여 고시하도록 했다. 한편, 위해우려제품의 지정 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절차는 2015년 4월 1일 제정된 「위해우려제품 지정 및 안전·표시기준」 고시에 제시되었다. 이 고시에서는 소비자들이 주로 생활용으로 사용하는 제품을 ‘일반 생활화학제품’으로 정의하고, 환경부장관으로 하여금 위해우려제품의 후보군을 선정하기 위해 일반 생활화학제품의 유통조사를 실시할 수 있게 했다.
그 결과 관리품목이 증가하는 결과가 발생했다. 2015년 법률 제정시에는 지식경제부의 생활화학가정용품 품목 등 8개 품목만 지정되었으나, 2017년 고시 개정까지 염료·염색류, 살생물제류와 기타제품류를 확대하여 23개 품목으로 확대하였다(Table 3).
2018년 「화학제품안전법」 제정으로 생활화학제품과 살생물제 관리가 더욱 강화되었다. 위해우려제품은 이때 안전확인대상생활화학제품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그리고 「화학제품안전법」은 생활화학제품 관리의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생활화학제품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고 우려제품에 대해 위해성평가를 하여 안전확인대상생활화학제품으로 지정하면서 안전기준을 마련하도록 했다. 기존에는 일반 생활화학제품이 위해우려제품으로 지정되는 과정이 구체적이지 않았으나, 새 법에서는 절차가 명확해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절차 개선의 효과로 안전확인대상생활화학제품은 법제정 이후 꾸준히 증가하게 된다. 2022년 11월 현재 14개 제품군에 42개 품목까지 늘어났다(Table 4).
「화학제품안전법」 시행에 따라 살생물제품의 경우 시장 진입 전 승인을 원칙으로 하여 사각지대 해소는 물론 안전관리 수준도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현재는 살생물제품 승인의 유예기간이 적용되고 있어 안전확인대상생활화학제품 중 살생물제품에 해당하는 살균제품과 구제제품에 대해서만 신고가 아닌 승인으로 관리하고 있다. 규제에 기반한 정책집행도 강화되었다. 「화학제품안전법」 시행 직후 환경부는 시장에 진입하는 새로운 유형의 살생물제품 및 살생물기능을 주장하는 유사제품에 대한 시장조사를 강화하여 불법적 요소가 있는 제품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한편, 2020년에는 하위법령을 개정하여 불법제품에 대한 시민 신고 포상금 기준들을 구체화하였다[12].
안전확인대상생활화학제품으로 지정된 제품에 대해 신고 또는 승인을 의무화하는 조항이 신설됨으로써 관련 제품의 전성분 정보를 환경부가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환경부는 제품 성분 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함으로써 제품의 안전기준을 내실화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제품 데이터베이스는 환경부로 하여금 새로운 정책 개발에 나서도록 이끌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사고 이후 국회 등은 국민의 피해를 조기발견할 수 있는 감시체계를 요구해왔다. 시장에 유통되는 생활화학제품과 살생물제품의 전성분 정보를 환경부가 확보함에 따라 국민의 위와 같은 요구를 충족할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생활 속 화학제품 피해의 조기발견이 가능해졌다고 판단하여 2021년부터 관련 연구를 수행 중이다[13][14]. 한편, 생활화학제품 데이터베이스에 올라있는 원료성분 중 유해성 정보가 부실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원료에 대한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화학물질등록평가법」에 따른 등록에서 누락되는 원료의 경우 어떻게 정보를 확보할 것인지 질문이 제기되고 있고, 정보가 없는 물질의 사용을 줄일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제품관리 업무가 국가적 수준에서 조정됨에 따라 기존에 기술표준원에서 수행하던 업무를 환경부에서 확대 수행하게 되었고 따라서 이를 담당할 새로운 조직이 필요해졌다. 환경부는 환경산업기술원 내에 생활화학제품안전센터를 설치하여,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 관리 업무를 수행하도록 했다[15]. 환경산업기술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생활화학제품안전센터 직원은 총 38명이며 이들 가운데 다수의 인원이 안전확인대상생활화학제품신고와 시장조사 및 제품 사후관리에 투입되고 있다.
Discussion
이 글은 우리나라가 “가습기살균제 피해라는 참사를 경험한 이후 어떠한 변화를 만들고 있을까?” 그리고 “그 변화는 참사를 경험한 나라에 찾아올 합당한 수준의 변화가 맞는가?” 두 질문을 던졌고, 2011년 이후의 변화를 추적해보았다.
참사 이전 생활화학제품은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 「약사법」, 「공중위생법」, 「화장품법」등으로 나뉘어 관리되었으며, 각 법령에 따라 관리대상으로 지정된 품목만 관리기준 등이 제시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관리대상으로 지정되지 않은 품목이나 구분이 모호한 품목의 안전관리가 어려웠으며, 신제품이 출시되는 경우 담당부처 및 소관 법령의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7][10][11]. 참사 이후 생활화학제품 관리가 지식경제부로부터 환경부로 이관되면서, 타법이 관리하지 않는 모든 생활 속 화학제품에 대한 관리가 시작되었고 이를 통해 사각지대를 줄여나가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는 관리품목을 특정하지 않고 관리제외 제품만 특정하는 일본 등[16] 해외의 방식과도 일맥 상통한다. 또한 신제품의 경우 환경산업기술원 생활화학제품안전센터에서 시장조사와 불법제품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신제품 중 위해우려가 높은 살생물제품에 대해서는 사전승인제도 및 안전확인대상생활화학제품 승인 등의 절차를 통해 적극 대응하고 있었다. 따라서 참사의 중요 원인인 제품관리의 사각지대 해소에 대해서는 대책을 적극적으로 마련하는 과정이라고 평가할 수 있었다.
다만, 사각지대가 근원적으로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현재의 조직과 인력이 국민을 보호하기에 충분한지는 의문이다. 안전확인대상생활화학제품 품목을 늘리면 자동적으로 생활화학제품 안전확인 신고업무와 제품 조사 및 사후관리 업무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업무에 충분한 조직과 인력 및 예산을 갖추지 못할 경우 사각지대 해소 능력과 의욕이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환경부의 화학물질관리 업무를 화학물질관리원으로 통합하는 「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이 2021년에 국회에 제출된 것[17]은 이러한 문제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참사 이후 환경부가 화학물질 및 화학제품 관리에서 맡게 된 역할이 커지면서 업무부담이 커졌기 때문에, 만약 화학제품 피해의 조기발견을 위한 감시체계까지 환경부가 운영하게 될 경우 조직 재편과 확대에 대한 모색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정부 조직의 확대나 재편은 정치적 이슈로서 원한다고 이루어지는 일은 아닐 수 있다. 만약 앞으로 정부 내 자원이 효과적으로 투자되지 않는다면, 참사 이후 추진되어온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노력이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은 분명하다.
한편, 사각지대를 조직과 인력의 투자로만 해결할 수는 없다. 원인자 책임의 원칙에 따라 「제조물책임법」이나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제품의 제조자나 수입자가 강력한 처벌을 받게 된다면 위험한 신규제품의 등장이 근원적으로 줄어들게 될 것이다. 따라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정착되는 수준에 따라 가습기살균제 사고와 같은 생활 속 화학제품에 의한 사고 위험의 감소 수준도 달라질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앞으로 지속적으로 관찰해야 할 과제이다.
또 다른 변수 중의 하나로 떠오르는 것은 2017년 등장한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 자발적협약」이다. 2016년 정부합동대책[2]이 발표된 후 환경부와 생활화학제품 제조사 간의 자발적인 노력을 위한 협약이 시작되었다[18]. 이후 시민사회단체가 이 협약에 결합하여 리스크 거버넌스로서 형식을 갖추면서 2023년 현재까지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협약에서는 제품전성분공개와 원료안전성평가 방법을 시민사회단체와 기업이 합의하여 추진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유해성이 낮은 원료로 구성된 제품을 우수제품으로 선정하여 공표하고 있어 정부의 규제나 정책을 보완하는 중요한 기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2024년 협약이 확대되고 기구가 상설화될 가능성이 있어 더욱 기대가 커지고 있다. 리스크 거버넌스는 후속적 고찰의 주제가 될 예정이다.
Conclusion
가습기살균제 사고는 제품관리에서 긍정적인 방향의 변화들을 발생시켰고 아직도 새로운 변화를 추동하고 있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과 같은 새로운 규제 흐름의 영향을 받아 생활 속 화학제품 관리 정책과 규제 및 거버넌스적 노력은 더욱 강화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노력에 부합하는 조직과 인력 구조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음은 제한점으로 지적된다. 이 때문에 참사의 교훈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도전을 멈추는 상황을 맞이할 우려가 존재한다. 망각의 시간이 찾아오기 전에 변화를 완성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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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진 등. 화학물질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 2021. 7. 1.
- 환경부. [보도자료]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정부·기업 자발적으로 손잡아. 2017. 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