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환경 화학물질 보건 문제와 정책 제언
Abstract
During the past several years, we have learned that our living environment is not safe from hazardous chemicals and the risks associated with such chemicals could claim significant costs to our society. Recently, a series of chemical safety issues among general public, including fipronil and other pesticide tainted eggs and fears over allegedly toxic sanitary pads, have again clearly showed that chemical safety management system of Korea has failed to earn people’s trust, and exhibited significant gaps to fill. The purpose of this essay is to suggest underlying causes of this failure in chemical safety system, and to emphasize several areas to consider to improve the current chemical safety management system of Korea.
Several reasons were identified to explain the current malfunctioning of the chemical safety management system. First, right-to-know of the public has often been neglected and hence informed decision was not possible. Second, risk assessment framework on which current safety regulations rely has limitations that should be supplemented by refined safety testing methods and epidemiological investigations. Third, specialized but separated managements by multiple ministries often leave some products or areas outside without proper management. In order to address these challenges, public’s right-to-know should be strengthened at community level. In addition, integrated and consistent systems for chemical risk assessment and disease surveillance should be prepared and streamlined with the functions of existing ministries that are responsible chemical safety management.
Recent experiences and public fears on chemicals in living environment indirectly show that the value of our society has been moving from industrial development to sustainability and health. The current chemical safety crisis should be the first step toward advancing the chemical safety management system of our society.
Keywords:
chemical safety, egg, sanitary pad, management system, right-to-know, risk assessmentIntroduction
생활환경에서 친숙하게 접하는 식품과 제품의 유해화학물질 오염 사건으로 우리 사회의 불안과 우려가 크다. 2017년 7월부터 유럽에서 커다란 문제가 된 계란 중 진드기구제제인 피프로닐과 기준을 초과한 비펜트린이 8월에 우리나라에서도 검출되었다. 이로 인해 며칠 동안 계란의 유통이 중지되는 초유의 경험을 겪었다. 곧이어 일부 일회용 생리대에서 휘발성유기화합물(volatile organic compounds, VOCs)이 검출되었으며 특정 회사 생리대 제품을 사용한 사람들 사이에서 생리기간 단축 등의 부작용을 경험했다는 보고가 잇따르며 생리대의 안전성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커졌다. 계란 중 살충제 오염과 생리대 안전성 우려 사태가 진행되면서, 소비자는 계란을 먹지 않고 면생리대와 외국산 생리대를 구입하는 방식으로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중독 사고가 사회적 관심사가 된 지난 2016년, 샴푸와 세제 같은 생활화학제품을 직접 만들어 쓰는 이른바 ‘노케미족’의 출현을 연상하게 하는 현상으로 정부의 화학물질 안전보건 관리체계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반영하는 증거이다.
지난 몇 년에 걸쳐 가습기 살균제 중독 사건을 겪으며 우리는 생활환경이 독성 화학물질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며 그 피해가 상상을 초월할 수 있음을 배웠다. 그러나 사회적 혼란을 경험하고 이에 수반되는 비용을 지불하고서도 반복적으로 비슷한 경험을 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화학물질 안전보건망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2017년 5월 출범한 새 정부는 ‘국민 건강을 지키는 생활안전 강화’를 국정과제로 채택하여 생활환경 중의 식품과 생활용품의 안전을 위해 노력할 것을 천명한 바 있다[1]. 최근의 화학물질 안전과 관련된 사회적 혼란과 국민 불안은, 생활안전 강화를 위한 국가와 사회의 노력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우리 시대의 최대 화학물질 중독 참사라 할 수 있는 가습기살균제 사건으로부터 도대체 무엇을 배웠는가? 가습기살균제, ‘살충제 계란’, ‘독성물질 생리대’와 같은 생활환경 불안의 외양은 제품, 식품, 위생용품 등 다양하고 관할 부처는 다르지만, 실상 이들은 모두 인체에 노출되는 화학물질에 대한 우려와 관리 필요성을 반영하고 있다. 이 연구는 최근의 생활환경 화학물질 안전문제와 그 원인을 진단하고, 재발을 막기 위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보건문제로서 화학물질
화학물질 의존성의 증가
일상에서 화학물질에 접하지 않고 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가소제, 난연제, 방부제, 소독제, 약, 세정제, 살충제, 화장품 등 실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화학물질이 우리 생활의 안전과 편리성을 위해 사용된다. 우리나라에서 등록되어 사용되는 물질은 45000여종이고 매년 새롭게 등록되어 시장에 유통되는 화학물질은 400종 이상이다. 우리는 ‘화학물질 의존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 사회의 화학물질과 화학제품 의존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화학산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다양한 화학물질이 일상생활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0년도 되지 않는다. 그 이전에는 자연에서 추출한 일부 활성 화학성분이 특정 목적을 위해서 사용되었을 뿐이다. 화학물질의 사용량과 종류가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한 것도 불과 수십년에 불과하다. 누구나 사용하는 플라스틱(PET)병은 1973년에 특허를 받아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유리병을 주로 썼다. 우리나라 15-59세 여성의 95.5%가 사용하는 일회용생리대도 본격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된 것은 1975년에 접착식 생리대인 ‘뉴 후리덤’이 출시된 이후이다. 햇빛이 강할 때 사용을 권장하는 자외선차단제도 1946년에 처음 개발되었으며 방수용 선스크린은 1977년에 도입되었다.
이 때문에 화학물질의 종류와 사용량은 최근 50년 동안 급격히 증가했다. 지난 1970년 이후 향후 2020년까지 전 세계 화학물질 판매액은 300배 증가할 것으로 추산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도 화학물질 생산 및 판매량이 큰 편에 속한다. 화학물질 판매량을 볼 때 프랑스, 브라질과 함께 세계 5-7위권의 화학물질 판매량을 기록한다. 일본 같은 전통적인 화학물질 선진국의 전 세계 판매액 비중이 감소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2000년의 12%에서 2010년의 6.5%), 우리나라는 비교적 화학물질 산업의 성장 속도가 빠른 편이다. 우리나라의 화학물질 유통량도 2002년의 287.4백만 톤에서 2014년 496.9백만 톤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2].
만성질환과 화학물질
1842년 채드윅은 노동자의 위생상태에 대한 보고서를 통해 불량한 위생환경과 상하수시설의 미비 등이 질병의 발생과 기대수명 감소의 원인임을 제시하였다[3]. 질병에 대한 직접적 치료보다는 문제의 예방을 위한 제도적 노력이 중요함을 강조한 채드윅의 기념비적 연구는 전 세계의 질병 피해 감소와 수명 연장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채드윅의 19세기 영국과는 달리 오늘날의 화학물질 노출은 심각한 피해를 초래하지만 보통은 눈에 보이지 않으며 그 원인의 탐색도 인과적 해석(causal interpretation)에 의지한다는 특성이 있다[4]. 현재 전지구적으로 증가하는 만성 대사성질환(비만, 당뇨병 등)과 여성질환(난소기능이상, 자궁내막증, 평활근종 등)의 발생은 식이, 생활양식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화학물질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4]. 이런 질병의 경시적(temporal) 발생양상이 화학물질 사용량 증가와 비슷한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관련된 역학적 상관성과 독성학적 증거가 축적되고 있다. 질병 발생의 유일한 원인은 아닐지라도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화학물질을 의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유례없이 다양한 화학물질에 만성적으로 노출되고 있으며 이로 인한 건강피해를 직간접적으로 받고 있다. 이런 건강피해는 19세기 유럽의 경우처럼 눈에 명확하게 보이거나 느껴지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심각한 피해를 초래하는 것이다. 화학물질 보건관리는 21세기 보건학에 던져진 중요한 과제이다.
관련 보건문제의 사회적 비용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 사회는 화학물질 안전관리의 실패를 반복해왔다. 반복적인 좌절은 사회와 국가는 물론 개인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화학물질 안전 문제가 반복해서 나타남에 따라 소비자는 화학물질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갖거나 반대로 안전 불감증을 얻게 되었다. 둘 다 바람직하지 않다. 화학물질에 대한 ‘완벽하고 확실한’ 안전관리가 어렵다는 빌미를 주어 기업과 국가의 책임 있는 안전관리 노력도 동력을 잃게 된다. 하지만 화학물질 노출로 인해 초래되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고려할 때 최선의 사회적 대처가 필요함은 명백하다.
화학물질 노출로 인한 피해는 매우 큰 사회적 비용으로 나타난다. 독일에서 개발된 의약품 탈리도 마이드는 1957년 시판을 시작한 후 수년 동안 유럽, 호주, 캐나다에서 무려 12,000 여명의 기형출산을 일으켰고 사산과 유산 수가 123,000명으로 추정되는 막대한 피해를 초래했다. 탈리도마이드 피해자의 상당수가 아직 생존하고 있으며, 이들의 신체적 장애에 따른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아직까지 생계비 또는 보상비를 정기적으로 지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가습기살균제의 안전관리 실패는 1천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금세기 최악의 화학물질 사고로 기록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 사고로 인해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사회경제적 부담을 지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계란, 생리대, 정수기, 베이비파우더 등 최근 우리 사회의 화학물질 공포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에서 널리 접하거나 사용하는 제품과 식품에 연결되어 있다. 오랜 시간을 보내며 영유아 등 취약인구가 머무는 사적인 공간의 만성 화학물질 노출이다. 가습기살균제와 탈리도마이드처럼 눈에 명확히 보이는 피해를 단기간 내에 일으키지는 않더라도, 일상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여러 제품을 통한 화학물질 노출이 초래하는 사회경제적인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유럽연합에서 내분비계 교란물질에 노출되어 초과 발생하는 건강피해의 비용이 유럽연합 전체 GDP의 1.23%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었다[6].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의 도전
내재된 도전 - 인과성 규명의 어려움
화학물질 노출로 인한 건강문제는 보통 특정 화학물질에 특이적(specific) 건강피해가 아니어서 원인적 연관성 규명이 어려운 경우가 많이 있다. 최근에 ‘독성물질 생리대’와 관련되어 제기된 건강피해인 ‘생리기간 단축’이나 ‘생리량 감소’ 등에 대해서 생리대 이외의 원인을 의심하는 전문가의 의견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화학물질 노출이 예를 들어 비만, 당뇨, 심맥관계 질환의 원인으로 중요하기는 하나, 화학물질 이외에도 유전, 식이, 생활습관 등의 영향도 매우 큰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질병과 화학물질 사이의 인과성을 규명하는 것은 더 어려워진다. 21세기 화학물질의 건강영향에 있어서는 더욱 인과적 연결이 어려우며 다소간 불확실하고 잠정적인 것일 수 있음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
위해성평가의 제한점
화학물질 관리에 활용되는 위해성평가의 제한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위해성평가는 화학물질 관리를 위한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도구로 1983년 미국연구위원회(National Research Council)가 ‘Risk Assessment in the Federal Government: Managing the Process’라는 책을 발간[7]하면서 틀을 잡았다. 환경 분야 의사결정을 위해 독성학을 활용하는 정책적 도구로 지난 수십 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환경기준 및 복원목표 설정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위해성평가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한 번에 한 물질씩, 그것도 알려진 독성영향에 근거하여 평가하는 방식으로는 21세기의 화학물질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에 근거하는 것이다. 위해성평가는 그동안 비약적으로 증가한 화학물질과 다양한 건강영향을 반영할 수 있도록 확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틀을 고정적으로 받아들이며 화학물질 위해성평가의 역할과 유용성이 지나치게 강조할 때 문제의 성격을 오해하고 되려 문제 해결이 어려워지는 경우도 생긴다. ‘독성물질 생리대’의 사용으로 인해 다양한 건강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들에 대해, 일부 물질에 초점을 맞춘 위해 평가를 수행하여 피해 여부를 판정하고 개선방향을 모색하겠다는 입장의 배경에는 위해 평가에 대한 맹신과 몰이해가 있다.
전문화와 분절화된 관리
관리부처의 이원화로 인한 사각지대에 대한 지적은 가습기살균제 사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사람에게 노출되는 화학물질에는 ‘농식품부’, ‘식약처’, ‘환경부’처럼 꼬리표가 붙어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품 종류와 관리 단계에 따라 여러 부처가 동일한 유해물질의 안전과 위생을 나누어 맡고 있다(Figure 1). 여러 부처가 관리하다 보면, 전문성의 상승효과가 나타나기를 기대할 수 있지만 부처에 따라 전문성의 수준에도 차이가 있고 부처 사이의 공백 지대가 종종 발생하여 관리의 맹점이 발생한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도, 원료로서는 환경부가 제품으로서는 산자부가 나누어 관리하면서 생긴 사각지대 때문에 문제가 나타났다. ‘살충제 계란’도 농식품부(생산현장의 위생관리), 식약처(유통 및 소비 단계의 위생관리), 환경부(생산현장의 환경오염) 등으로 분절 관리되면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분절화된 전문영역 사이의 사각지대에서 위험이 나타난다.
소통과 알 권리 보장 기반의 취약
생활환경 화학물질 안전문제는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을 내재한다. 따라서 신속한 위기의 종료 선포보다, 발생한 문제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대처를 위한 노력을 이해시키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었다. ‘살충제 계란’과 ‘독성물질 생리대’의 경우에도 정부의 성급한 위기 종료 선언과 갈팡질팡하는 발표에 따라 국민의 불안감은 커졌다. 위해 소통의 실패는 혼란으로 연결된다.
알 권리의 보장은 적절한 교육으로 보완된다. 화학물질 위험에 관련된 교육의 부재가 지적되어야 한다. 감염병에 대처하기 위한 예방접종이나 위생교육은 학교, 대중매체, 의료기관을 통해 지속적으로 받아왔지만, 화학물질 안전과 위생에 대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다. 적절한 수준의 지식을 바탕으로 한 알 권리 없이 주어진 선택권은 실효성이 없다.
화학물질 안전사회를 위한 제언
가습기 살균제 사고는 화학물질 안전관리 체계를 내실화하라는 구체적인 경고였다.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안’ 제정과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같은 형태로 응답했다. 아쉬운 점이 적지 않다. ‘소잃고 뒤늦게 외양간이라도 고친’ 격이어서 이를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화학물질 전반인데 이를 살생물물질(제품)과 일부 생활화학제품에만 범위를 좁혀서 적용한 것이다. 이런 제도로 ‘살충제 계란’과 ‘독성물질 생리대’를 예방할 수 있었을까. 새 정부는 국정 추진 전략 중 하나로 ‘국민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안심사회’ 추진을 분명히 밝혔다. 이는 생활환경의 화학물질 안전 문제에 대한 총체적인 반성과 개혁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문제를 단순화해보면 답이 보인다. 가습기살균제, ‘살충제 계란’, ‘독성물질 생리대’...... 제품, 식품, 위생용품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관할 부처는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하나의 문제를 가리키고 있다. 바로 화학물질 안전이다.
드러난 문제점에 대한 철저한 개선
문제가 된 지점에 대한 검토와 반성을 통해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막는 것은 일차적인 과제이다. 예를 들어 ‘살충제 계란’의 발생을 막기 위해서는 먼저 축산 생산현장에서 사용되는 방역용 약제의 관리체계의 개선이 필요하다. 축산용 살충제의 약사관리에 문제가 있고 이 때문에 생산현장에서 검역용 약제의 내성이 관리되지 못했고 사용 농약의 안전성을 점검하지 못한 것이다. 닭진드기는 유럽은 83%, 한국은 94% 닭에 감염되어 있다. 닭진드기 방제를 농가의 손에만 맡겨둠에 따라 결국 약제 내성이 형성되어 농가는 새로운 살충제를 찾아 나서게 되고 결과적으로 식탁의 오염으로 이어진 것이다. 또한 유통 이후의 단계에서 감시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유통 단계 이후의 안전성 감시를 통해 소비자의 건강피해가 없도록 관리하는 것은 식약처의 임무이다. 계란의 경우에 2016년에야 비로소 ‘잔류물질 중점 검사항목’을 지정하여 연간 1000건 이상 검사하도록 되어 있지만 이나마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잔류물질 검사항목의 지정이 꼼꼼히 이루어졌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생산현장의 살충제 사용에 대한 정확한 파악 없이 지정되어 검사대상 항목에서 누락된 물질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생리대의 경우에는 현재 적절한 안전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더 꼼꼼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즉 현행의 안전성 관리 측면의 문제가 없는지 점검하고 향후 안전한 사용을 위한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통합위해성평가 체계 구축
분절화된 관리의 제한점을 점검하고 개선할 필요가 있다. 유해화학물질의 최종 수용체인 사람(또는 생태계) 중심의 통합 안전 관리체계가 시도될 때가 되었다. 매체와 재료 등으로 나뉜 분절적 관리는 결국 실패로 귀착되기 쉽다. 물론 각 부처의 틀을 인정하면서, 전문성을 취지에 맞는 수준으로 향상시키고 부처간 조율과 협력창구를 마련하는 방식으로 화학물질 안전보건 통합관리망을 촘촘히 개선할 수도 있다. 최근 국회에서 발의를 예고한 ‘인체적용제품 등의 위해성평가에 관한 법률안’이 좋은 예다. 그러나 수평적 지위의 부처간의 조율과 협력은 보통 쉽지 않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유럽의 화학물질청(ECHA)과 비슷한 화학물질 위해성 평가기관을 설치하여 부처의 관리 역할과 연계하는 것이 좋은 방안이다. 전문성과 사각지대 없는 관리를 위해서는 통합적 평가체계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환경보건 기반 안전망 보완
화학물질 안전 관리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현재 화학물질 안전 관리를 위한 중요한 방법론적 도구는 위해성평가다. 식약처의 식품 중 유해물질 잔류허용기준 설정이나 환경부의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 등 화학물질 안전관리를 위한 대부분의 법적 수단은 위해성평가에 기반하고 있다. 하지만 위해성평가에만 의존한다면 화학물질 안전망에는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일부 화학물질의 알려진 독성정보에만 근거해서, 현대의 복잡다양한 화학물질 노출과 건강피해를 예측하거나 관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Figure 2).
환경보건조사 또는 역학조사를 이용한 제도의 보완이 필요하다. 건강영향 문제를 위해성평가에만 국한하지 않고 환경보건 역학조사로 보완할 때, 미처 안전망에 걸리지 않았던 위해요인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 이 결과는 다시 위해성평가에 환류되어 안전망을 더욱 내실 있게 만든다.
현재 환경보건법은 제17조- 건강영향조사의 청원을 통해 환경유해인자로 인한 건강상의 피해가 발생하거나 우려되는 경우 국민이 환경부장관에게 조사를 청원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형태의 조사를 화학물질 전반에 대한 건강영향으로 확대하고 이를 관할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방식이 고민되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조사청원권의 보장이 약한 제도적 장치로 민원제기 수준에서 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즉 건강영향조사의 청원이 실효성 있는 평가와 조사로 이어져 문제해결까지 갈 수 있도록, 그 절차와 결과 공표 및 이해당사자 사이의 정보소통에 있어서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가칭 ‘환경보건청’과 같은 기관을 설치하여 화학물질 노출의 건강영향 신고에서부터 조사와 관리방안 개발, 관련 정책의 수립 및 집행까지 아우르는 역할을 담당하게 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보인다(Figure 3).
알 권리 보장을 통한 개인의 선택권 강화
국가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통해 국민의 건강과 생존권을 보장할 뿐이다. 더 중요한 직접적인 선택은 국민 개인의 몫이다. 소비자가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가 투명하게 전달되어야 한다. 투명한 소통을 통한 알 권리의 보장은 화학물질 안전망에 대한 국민의 신뢰의 필요조건이다. 알 권리는 나아가 ‘모르는 것’에까지 확대되어 보장되어야 한다. 알 권리의 보장은 궁극적으로 개인의 선택권을 강화한다.
알 권리 보장은 공교육과 사회기반시설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초중등 교육과 보건소 등에서 화학물질 안전보건에 대한 기초적 지식이 전달되어야 한다. 정확한 환경보건 지식이 전달될 때 국민의 불필요한 불안과 위험한 맹신은 최소화될 것이다. 한편 이러한 지식은, 화학물질 의존성에 대한 성찰로도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화학물질 의존성이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대안의 삶이 존재하는 것이라는 사실도 전달될 수 있어야 한다.
Conclusion
최근의 화학물질 안전에 대한 사회적 혼란은 우리 사회의 화학물질 의존도가 급속히 커짐에도 불구하고 화학물질 안전보건 관리체계는 이에 따라 선진화되지 못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화학물질관리의 분절화는 사각지대와 비효율을 수반한다. 위해성평가와 건강피해 감시 체계의 일원화와 전문화로 생활환경 화학물질 안전문제의 많은 부분에 대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최근의 생활환경 화학물질 안전 관련 우려와 불안은 우리 사회가 성장 중심의 산업사회적 가치에서 벗어나 생존과 건강을 지향하는 지속가능성으로 가치를 바꾸어가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었다. 화학물질 안전망의 위기가 우리 사회의 안전관리체계의 선진화로 연결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 이유이다.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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