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orean Journal of Public Health
[ Article ]
The Korean Journal of Public Health - Vol. 62, No. 2, pp.12-44
ISSN: 1225-6315 (Print)
Print publication date 31 Dec 2025
DOI: https://doi.org/10.17262/KJPH.2025.12.62.2.12

차별은 어디에 존재하고 어떻게 작동하는가: 장애인 차별 연구의 8가지 논점들

김승섭1, 2, * ; 문영민3 ; 최하늬1 ; 황윤하1
1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
2서울대학교 보건환경연구소
3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부
Eight paths of discrimination research: Focusing on people with disabilities in South Korea
Seung-Sup Kim1, 2, * ; Yeongmin Mun3 ; Hanui Choi1 ; Yoonha Hwang1
1Department of Environmental Health Sciences, Graduate School of public health, Seoul National University , Seoul, Korea
2Institute of Health and Environment, Seoul National University , Seoul, Korea
3School of Social Welfare, Chung-Ang University , Seoul, Korea

Correspondence to: *Seung-sup Kim ( kim.seungsup@snu.ac.kr) Department of Environmental Health Sciences, Graduate School of Public Health, Seoul National University, 1 Gwanak-ro, Gwanak-gu, Seoul 08826, Republic of Korea

‘차별은 공기와 같아 기득권에게는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보이지 않지만,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은 삶의 모든 순간을 차별과 함께 살아간다.’ (<장애의 역사> 역자 서문 중)

Abstract

Discrimination exists and operates at various levels, from structural levels including laws and institutions to unconscious internalization whereby individuals come to deny their own potential by accepting dominant ideologies. However, discrimination research in the field of public health has tended to focus on interpersonal perceived discrimination that is directly experienced by individuals and its health impacts. Focusing on people with disabilities, this paper sought to discuss the multiple levels of discrimination and their complex operating mechanisms that can contribute to pathologizing the human body, based on the authors’ experiences in discrimination research, extensive literature reviews, and in-depth interview data. Through this analysis, the paper aims to present, explain, and explore the key considerations that future research should take into account. These considerations are essential to comprehensively understand the relationship between discrimination and health and to create policy alternatives that prevent disease and improve lives. The eight key issues in disability discrimination research covered in this study are as follows: (1) Structural discrimination, (2) Microaggressions, (3) Avoidance and abandonment of situations, (4) Difficulties in recognizing and reporting discrimination, (5) Intersectionality, (6) Life course perspective, (7) Internalized ableism, and (8) Disability as a resource.

Keywords:

disability discrimination, structural discrimination, microaggression, intersectionality, ableism

서론

(1) 차별과 소수자의 몸

차별의 정의는 ‘둘 이상의 대상을 각각 등급이나 수준 따위의 차이를 두어 구별함’(표준국어대사전)이다. 인간 존재의 다채로움을 생각할 때, 둘 이상의 존재를 구별하는 행동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차별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인간을 대상으로 ‘등급이나 수준’을 매기고, 우월한 존재와 열등한 존재로 나누는 그 위계적 권력 때문이다. Krieger는 차별은 지배 집단이 자신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소수 집단 또는 개인을 “부당하게 대우(unfair treatment)”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1]. 불평등한 권력으로 인해 발생한 차별은, 차별받는 사람들의 행동양식, 생각, 삶을 여러 방면으로 제한하고 억압하며 인종, 젠더, 성적 지향, 종교, 양심, 장애와 같은 여러 이유로 작동한다.

차별은 소수자 집단의 특성을 낙인화하는 정치적 이념에 따라 형성되고 합리화된다. 예를 들어 인종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종종 사용되는 피부색은 진화론적으로 멜라닌 색소의 양에 따라 거주지역의 일조량에 생존 확률이 차이가 났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2]. 이러한 생물학적 차이가 차별로 이어진 것은 16세기 이후 계속된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적 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해 등장한 인종주의라는 차별적 이데올로기를 통해서였다. 인종주의는 과학의 이름으로 피부색에 따라 타고난 능력의 ‘등급이나 수준’을 정하고, 지배하는 우월한 백인과 지배 받아야 하는 열등한 유색인종으로 나누어 차별을 합리화하고 재생산했다 [3]. 이러한 합리화와 재생산은 젠더, 성정체성, 연령 등 소수자성에 따른 차별에서도 나타난다 [4].

기존의 차별 연구들은 인간을 위계화하는 권력이 역사 속에서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깊게 뿌리 내렸으며, ‘열등한’ 존재로 구분된 인간들의 삶을 다양한 영역에서 억압하고 그들의 몸에 상처를 남긴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5]. 차별은 의사-환자, 노동자-고용주와 같은 개인 간의 만남에서도 발생하지만, 개인적 관계를 넘어 다양한 층위에서 전방위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차별은 문서화된 법이나 제도 수준에서 작동하기도 하며, 동시에 특정 소수자 집단의 구성원들이 지배 집단이 역사적으로 생산한 차별적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여 스스로의 능력을 폄하하고 자신의 존재가치를 부정하게 만드는 것처럼 개인의 깊은 무의식 수준에서 작동하기도 한다.

차별은 인간 삶에 영향을 미친다. 차별을 경험하는 이들은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더 열악한 조건을 감내하게 된다. 건강한 출생과 존엄한 사망에서, 질 좋은 교육과 안전한 주거에서,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와 아플 때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에서 소수자 집단은 배제당하기 쉽다 [6]. 지난 30여 년간, 보건학 연구들은 다양한 연구 방법론을 이용하여 차별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해왔다. 기존에 수행된 연구들은 차별이 소수자 집단을 병들게 하고 병들게 된 사람들이 치료받지 못하게 하여, 그들이 더 낮은 삶의 질을 영위하고 더 빨리 사망하게 만든다는 결과를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다 [7].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역사적 맥락에서 진행된 연구를 통해 드러난 이러한 결과는 사회적 환경이 인간의 몸을 병리적으로 바꾸는 과정을 보여주는 주요한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2) 한국의 장애인 차별

장애인 차별은 장애인의 몸이 가진 생물학적 특성에 대한 정치적 이념을 통해 역사 속에서 합리화되었다 [8]. 비장애중심주의(ableism)는 인간의 신체와 정신을 ‘능력’에 따라 위계화하고 등급을 나누고, 장애인의 몸을 생산적이지 못한 열등한 존재로 낙인찍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차등 대우를 정당화했다 [9]. 비장애중심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장애인은 비장애인을 표준으로 여기며 역사적으로 형성된 인간에 대한 믿음과 선호에 의해 그 가치가 판단된다.

한국에서는 장애인권운동의 성과로 2008년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 」 이 시행되며 법적으로 장애인 차별은 금지되었다. 장애인 당사자들이 입법 운동을 통해 이뤄낸 이 법률은 직접 차별만이 아니라, 간접 차별과 정당한 편의지원 거부 등을 포함하여 장애인이 삶 전반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2008년 법의 시행 이후 「장애인차별금지법 」 은 지속적으로 개정이 이루어져 왔다. 2010년과 2012년 장애인이 사법 절차에서 조력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강화하는 조항이 추가되었고, 2014년에는 시각장애인에게 ‘점자·음성변환용 코드가 삽입된 자료’ 제공을 의무화하는 개정이 진행되었다 [10].

하지만,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후 17년이 지났음에도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된 사회와 역사 속에서 축적되어 온 차별은 여전히 장애인의 삶 곳곳에서 작동하고 있다. 법적 영역에서 부당함을 주장하거나 입증하기 어려운 차별이 삶 곳곳에서 장애인의 삶을 옥죄고 그들의 몸을 해치고 있다. 예컨대 2022년까지 장애인차별금지법을 근거로 하여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된 사례 중 장애인 의료 접근성 차별행위로 판단된 사례는 단 1건으로 나타났다 [11]. 이는 의료서비스 영역에서 장애인 차별이 드물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차별의 부당함을 주장하기 어렵다는 점을 드러낸다. 한 연구는 의료서비스 이용과정에서 차별을 경험한 경우에, 장애인들은 긴 시간이 소요되는 차별의 입증과 소송 과정에 부담을 느끼고 그 과정에서 더 이상 의료 서비스를 받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에 부당함을 공론화하기 꺼린다고 지적했다 [12, 13].

한국에서 장애인들이 취업과정이나 직업을 유지하면서 겪었던 차별 경험을 연구하고 [14, 15, 16], 사회적 경험에서 배제되는 현상을 면밀하게 분석하며 [17], 미묘하게 드러나는 장애인 차별을 탐구할 뿐 아니라 [18] 장애인을 포함한 소수자 집단의 차별과 건강 관계에 대한 체계적 문헌 고찰을 진행하는 등 [19] 차별의 다면성을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는 연구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에서 장애인 차별에 관한 연구의 상당수는 장애인이 병원, 직장, 공공기관 등에서 직접 경험하는 구체적인 차별경험에 집중되어 있다. 개인이 부당한 일을 경험하고 인지하고 보고하는 사건과 상태에 집중하는 것이다.

표1은 국내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국내의 여러 설문조사 중에서 차별 항목이 포함된 문항이 담겨있다. 예를 들어, 장애인삶 패널조사에서는 “귀하는 장애인 가정으로 살면서 가족, 친구, 이웃 등 주변으로부터 어느 정도 차별을 받고 있다고 느끼십니까?”라는 질문으로 일반적인 차별 인식을 묻고, “어느 부분에서 차별받고 있다고 느끼십니까?”라고 질문으로 차별받았다고 느끼는 구체적인 영역을 확인한다. 또한 장애인고용패널조사에서는 “OOO님은 지난 조사(2021년 O월) 이후를 기준으로 이 일자리(직장)에서 채용, 업무, 평가, 임금, 복리후생 등에서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으로 차별경험을 묻고 이후 “OOO님은 이 일자리(직장)에서 지난 조사(2021년 O월) 이후를 기준으로 장애로 인해 어떠한 차별을 경험하였습니까? 차별받은 분야를 모두 말씀해 주세요.”라는 질문으로 차별받은 구체적인 영역을 확인한다. 이 질문들은 장애인이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차별을 측정하기 위한 설문 도구로, 여러 논문들이 이 질문들을 활용해 차별 경험이 장애인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해 왔다 [20, 21]. 이러한 차별 경험이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차별과 감각적으로 가까운 것은 분명하다.

국내 장애인 대상 설문조사 중 차별 항목 포함 문항 예시

하지만, 만약 우리가 차별을 이러한 문항에 한정하여 개인이 부당한 대우를 보고한 상황이나 사건으로만 이해하고 측정할 경우, 차별 개념을 상대적으로 협소하게 간주하고 실제 장애인이 맞닥뜨리는 부당한 삶의 장벽들 역시 단편적으로 이해하기 쉽다. 차별은 개인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사건을 넘어 전방위적으로 다양한 양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3) 한국의 장애인 건강불평등

왜 보건학 분야에서 장애인의 건강은 주요한 문제로 다루어지지 못했는가? 이 질문에 대해 <보건장애학>에서 드럼은 공중보건 모델의 변화를 지적하며 답한다 [22]. 오랫동안 보건학은 건강 결과를 질병의 이환과 사망을 기준으로 측정하며, 그러한 지표 개선을 주요 목표로 삼았다. 그 과정에서 장애는 기능을 상실하게 만들어 활동력을 저하시키는 상태로, 보건 프로그램을 통해 예방되어야 할 대상으로 여겨졌다. 장애인은 이미 아픈 사람으로 간주되고 건강하기 위한 요건을 달성하지 못한 존재로 규정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보건학에서는 장애인의 건강 불평등이나 건강 증진에 대한 논의가 제한되었다.

이러한 전통적 관점을 비판하며, 장애인을 예방되어야 할 상태를 이미 가지고 있는 존재로 규정하는 대신 장애인 집단의 건강 증진을 적극적으로 탐구하는 보건학 연구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장애를 신체적, 정신적 손상으로 간주하여 개인적 치료와 재활에 주목하는 의료 모델에서 벗어나, 사회구조적 배제와 억압으로 인해 장애가 형성됨을 강조하는 사회모델(social model)의 관점에서 건강을 바라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장애인의 건강불평등은 단순히 손상으로 인한 건강 상태의 차이가 아니라, 구조적 원인으로 인해 발생한, 개입이 필요한 불평등이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장애인의 건강불평등을 탐구하는 연구가 진행되어 왔으며, 한국에서도 관련 연구를 통해 장애인이 비장애인에 비해 더 많이 아프고 더 빨리 사망한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검진자료를 분석하여 장애인의 건강행태와 만성질환을 확인한 김지영 외의 연구에 의하면 건강 행태 측면에서 신체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장애인이 전체의 65.1%, 비장애인이 60.4%로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장애인의 신체활동 비율이 낮았다 [23]. 또한 당뇨, 뇌혈관질환, 암과 같은 만성질환을 가질 위험이 장애인이 비장애인에 비해 각각 1.55배, 4.07배, 5.0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3]. 정신건강을 살펴보았을 때도 상황은 비슷하다. 한국복지패널 1-10차 자료를 활용하여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우울수준을 살핀 유창민의 연구에 의하면, 1차년도(2006)부터 10차년도(2015)까지 모두 장애인의 우울수준이 비장애인보다 유의하게 높았다 [24].

더 나아가 이러한 차이는 사망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국가표본코호트를 활용한 Park et al. 의 연구에 의하면 장애인의 연령 표준화 사망률은 10만 명 당 913.9명으로 비장애인의 327.9명에 비해 약 2.80배 높았으며, 사망 위험도를 분석했을 때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자연사 1.84배, 자살 1.83배, 부상사망 1.54배 위험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25]. 또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국가건강정보DB를 활용한 Bahk, Kang & Khang의 연구에 따르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기대수명 격차는 평균 18.2년에 달했다 [26]. 기대수명 격차가 2004년에 20.4년에 비해 2017년 16.4년으로 감소하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10년 이상의 큰 격차가 유지됐다. 특히 장애등급별로 확인했을 때 장애 중증도가 가장 높은 장애인의 기대수명은 49.7세로 비장애인 84.4세의 약 59%에 불과하였다.

(4) 보건학 연구는 어떤 차별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지난 25년간, 보건학 분야에서 차별의 건강 영향을 검토하는 연구는 급증했다. 차별과 건강에 대한 최초의 문헌검토 연구는 1999년 출판되었다 [1]. 그 논문에 포함된 보건학 연구는 20편에 불과했고, 모두 미국에서 진행된 연구였으며 그 중 15편이 인종차별에 대한 연구였다. 이후 차별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며 2013년에 이미 그 누적된 논문 숫자가 500편이 넘었고 [27] 이제는 하나의 문헌고찰 논문으로 연구를 정리할 수 없어 문헌고찰 연구는 건강 변수에 따라 별개 논문으로 출판되고 있다 [28, 29, 30]. 오늘날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를 포함해 다양한 국가에서, 인종, 성별, 성적지향, 장애 등과 연관된 다양한 차별을 검토한 건강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와 함께 기존 연구 경향에 대한 비판이 점점 커지고 있다. 비장애인의 몸을 표준으로 설계된 사회에서 장애인은 다양한 층위의 차별에 노출되어 살아간다. 불합리한 제도 및 물리적 장벽으로 인해 장애인은 주거, 교육, 고용, 의료 서비스를 비롯한 영역에서 존엄한 삶을 누릴 기회를 박탈당한다. 이러한 차별은 법적으로 명문화되거나 암묵적으로 방치되는데,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장애인 차별이 합리성의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다수의 차별과 건강 연구는 차별의 구조적 문제를 조명하기보다 개인이 보고하는 차별 경험에 집중하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은 한국에서도 다르지 않다. Lee et al. 은 2022년 말까지 출판된 한국의 이주민 차별과 건강의 연관성에 대한 체계적 문헌검토를 진행하여 43편의 연구를 검토하였다 [31]. 이 연구에 포함된 모든 논문 역시 개인의 차별 경험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이주민이 경험하는 구조적 차별 및 내재적 차별과 같이 다층적인 측면에서 차별을 다룬 보건학 연구는 없었다. 합법적인 형태로 행해지는 제도적 부조리나 역사적 트라우마로 인한 차별적 문화는 보건학의 차별 연구에서 상대적으로 다뤄지지 못하고 있다.

보고되지 못하는 차별 경험이 보건학 연구에서 누락되고 있다는 점 역시 주요한 비판 지점이다. 손인서, 김승섭은 2014년 8월 31일까지 출판된 한국의 이주민, 동성애자, 장애인을 포함한 소수자 집단으로 진행된 차별과 건강 연구를 검토하는 체계적 문헌 고찰을 진행하였다 [19]. 논문에 포함된 양적인 연구는 46편이었는데, 그 모든 논문에서 차별이 응답자의 자기 보고에 기반한 경험으로 측정되었다. 그러나 차별을 인지하고 보고하는 과정에는 한 사회가 무엇을 차별이라고 여기는지와 그 경험을 말하는 것이 어느 정도 허용되는지와 같은 요인들이 작동한다. 예를 들어, 사회의 지배적 이념을 받아들인 장애인 당사자는 무의식적 영역에서도 비장애중심주의를 수용하여 자신의 가능성을 스스로 폄하하기 쉽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애인은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그것을 차별로 인지하고 보고하는 목소리를 내기 어려울 수 있고, 차별의 원인을 부조리한 외부 환경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이나 예민함으로 돌릴 수 있다 [32]. 하지만, 차별 경험은 당사자가 인지하거나 보고하지 못한 경우에도 몸에 흔적을 남긴다 [33]. 이렇게 발화되지 못한 차별경험을 기존의 보건학 연구는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

때로 이러한 차별이 장애인 삶에 미치는 영향은 개별적인 사건만으로 파악하기 어려우며, 유아기부터 성인기까지 다양한 층위에서 축적되는 차별의 영향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애주기적 관점에서 장애인의 건강을 바라보아야 한다 [34]. 그러나 많은 보건학 연구는 단발적인 사건이 건강에 미치는 당장의 영향을 확인하는 데 집중하여 장애인의 전생애에 반복적으로 누적되는 부정적 경험의 영향을 파악하는 데 초점을 맞추지 못했다. 또한 인간은 인종과 성별과 장애와 연령과 국적을 포함한 여러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고 여러 요인들로 인한 차별들로부터 동시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35]. 인간은 그러한 교차성의 지점에서 차별을 경험하며 살아가지만, 한국에서 진행되는 대다수의 보건학 연구는 하나의 정체성에 기반한 차별만 다루고 있다.

크리거는 보건학에서 차별 연구가 이처럼 개인의 경험에 한정되어 진행되는 이유로 20세기 초반부터 지금까지 질병의 원인을 바라보는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생의학적 패러다임과 환원주의를 지적한다 [36]. 생의학적(biomedical) 패러다임은 질병의 발생 원인을 개인의 몸에서 발생하는 분자생물학적 병리 과정으로 국한시키고, 환원주의는 부분의 특성이 전체의 특성을 설명한다는 관점으로 인구집단의 질병 양상을 개인 질병의 합으로 바라본다. 이러한 두 관점은 차별의 다양한 층위와 복잡한 작동방식을 탐구하는 대신에, 개인이 경험하는 보고된 사건으로 측정된 차별 경험과 그 선형적 인과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질병을 탐구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어떤 차별을 어떻게 연구해야 하는가. 저자들은 차별과 건강에 대해 연구를 진행해온 경험과 심층 인터뷰 자료와 최신 학술 논의를 종합해, 향후 차별 연구에서 고려되어야 할 8가지 논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해당 논점에 관한 이론과 개념을 검토하였으며, 학술 논의의 맥락 및 역사적 배경 등을 함께 설명하고 탐구하고자 하였다. 특히 학술논문 및 연구 보고서 등 문헌을 검토하고 연구자들이 수행한 심층 인터뷰 내용을 통해 사례를 제시하여 보다 구체적이고 다층적인 차별의 존재와 작동방식을 논하고자 했다. 본 연구에서 인용한 장애인 당사자의 경험은 저자들이 2021년, 2021-2022년, 2023년 수행한 세 연구의 심층 인터뷰 데이터를 근거로 하였다. 표2는 연구에 참여했던 장애인 당사자의 성별, 연령, 장애유형, 거주지역을 보여준다. 각 연구는 서울대학교 생명윤리위원회에서 승인을 받았다(IRB No. 2307/002-012, IRB No. 2110/001-011, IRB No. 2109/003-011).

심층 인터뷰 참여자의 기본 정보


본론

논점 1. 부조리한 무대 위의 ‘자연스러움’: 구조적 차별

구조적 차별(structural discrimination)은 정치, 문화, 역사적 맥락 속에서 사회에 고착되어 작용하는 거시적 차원의 차별로, 특정 인구집단의 구성원을 대상으로 국가 기관 혹은 민간 기관의 불평등한 정책이나 관행, 차별을 조장하는 사회문화적 환경과 체계가 이에 포함된다 [37]. 구조적 차별의 예시로 미국 남부 11개 주에서 시행됐던 짐 크로우 법(Jim Crow Law)을 들 수 있는데, 해당 법은 1876년부터 1965년까지 시행되던 당시 합법적으로 백인이 사용하는 학교, 식당, 교통수단 등에서 흑인의 출입을 금하여 인종 간 분리를 이루고 흑인의 사회적 기회를 박탈하는 데 활용되었다 [38].

구조적 차별은 짐 크로우법과 같은 합법적 형태로 승인된 법이나 제도가 아니더라도 편의 제공의 거부, 기회의 차단, 차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와 논리에 의하여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IMF 경제위기 이후 벌어진 ‘농협 사내부부 여성 우선해고 사건’은 법이나 제도가 아니지만 성차별적인 문화에서 기인한 광범위한 차별 대우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한쪽 배우자가 명예퇴직하기로 신청한 부부 중 91.5%에서 여성 배우자가 퇴직을 선택했다 [39]. ‘여성 배우자가 퇴직해야 한다’는 명문화된 법이나 제도가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한 집단의 퇴직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차별로 작동한 사례이다.

사회가 비장애인을 표준적인 구성원으로 여길 때, 장애인은 태어나고 교육받고 노동하는 모든 공간이 차별적인 무대인 채로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차별은 ‘합법’적이고 ‘상식’적이기에 장애인은 차별을 경험하고도 이를 차별이라고 인지할 수 없다. 오늘날 장애인을 명시적으로 차별하는 법과 제도의 존재는 드물지만, 역사 속에서 장애인 차별을 공식적으로 합법화했던 사례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어글리 로(Ugly Law; the unsightly beggar ordinance)다. 어글리 로는 1729년 영국에서 실시되어 신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이 공공장소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처벌하는 법이었다. 이 법은 장애를 가진 걸인들이 길거리에서 구걸하지 못하도록 하여 도시의 미관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40]. 미국에서는 어글리 로가 186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으로 통과되었으며, 포틀랜드(1881), 뉴올리언스(1883), 덴버와 링컨(1889), 콜롬버스(1894), 펜실베이니아 주 전체(1891), 리노(1905)에서 제정되는 등 미국의 전 지역에서 존재했다 [41]. 시카고에서는 1973년까지 가장 오랜 시간 합법적으로 남아있었다. 시카고에서 목발이나 휠체어를 타고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장애인은 어글리 로를 위반할 때마다 1달러의 벌금을 내야 했다. 어글리 로가 상식적인 규정으로 받아들이던 시기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이 길거리를 돌아다닐 수 없다는 것은 합리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 법이 ‘차별’이라는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고 폐지된 것은, 미국 사회에서 1973년 재활법 개정안 504조가 통과된 이후였다.

한국 사회에서도 장애인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제약과 장벽들을 ‘차별’로 규정하고 제재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장애인 차별을 금지하는 법·제도의 제정 이전 시기에 유년기와 성인기를 보낸 본 연구의 참여자들은 이동, 교육, 노동을 포함한 삶의 전 영역에서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했고, 이를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도 상상하지 못했었다고 말했다.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과 권리보장을 위하여 국가와 지방자치 단체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명시한 「장애인 복지법」은 1989년도에야 시행되었다 [10]. 「장애인복지법」은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고, 제8조에서 ‘장애를 이유로 정치·경제·사회·문화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는 반차별조항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차별을 구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수단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현실적으로 큰 의미를 갖기 어려웠다.

장애정도가 심한 지체장애인 참여자28과 참여자31은 1960년대에 태어나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과 제도의 부재 속에서 학업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청소년기 대부분 집에서 머물러야 했다. 참여자들이 스스로 일상을 구성할 수 없었으며 장래 희망조차 상상하기 어려웠다는 구술은, 차별이 어떻게 한 개인의 삶에 깊숙이 침범해 작동하는지 보여준다.

연구자: 초등학교 졸업하시고 휠체어를 20살 때부터 타셨던 거죠. 그때까지는 좀 어떻게 생활을 하셨어요?
참여자31: 그때는 그냥 생활이라는 게 없어요. 그냥 집에서 있어야 되니까. 평생 나한테도 전화 한번 와봤으면 좋겠다. 집에서 나가려면 누구한테 업혀 나가야 되는데 아예 할 수가 없죠. 나가서 생활을 못하니까. 그래서 집 안에서만 이제 있었죠.
참여자28: 내가 사회에 나와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일단 제가 제 몸을 움직이지 못하잖아요. 제가 할 수 있다는 거는 없었던 것 같아요. 세상이 좀 무서웠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시설에서 휠체어 타고 돌아다니면서 타고 내리고 그런 것들이 자유롭지 못하니까.

하지만 2001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되고,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시행됨에 따라 장애인 차별에 대한 권리구제 절차가 최초로 시행되었다. 2001년부터 장애우권익연구소에서 장애인 차별 사례를 접수하고 상담하는 ‘차별상담전화’ 사업을 실시했고 공익소송을 진행했으며 [42], 국가인권위원회에 2007년 3월까지 접수된 차별 진정 사건 중에서 단일 사유로는 장애인 차별 건이 가장 많았다 [43]. 2008년에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되며 모든 생활영역에서의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이 금지되고,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는 사람을 효과적으로 구제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겨났다 [10]. 물론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되기 이전부터 장애인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으나, 법을 통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법적 수단이 생겨나면서 비로소 장애인 차별을 규제할 수 있게 되었다. 장애인은 자신이 경험하는 제약과 장벽을 ‘차별’로 인식하고 해석할 수 있는 ‘무대’를 가지게 된 것이다.

또한, 2000년대에 들어 장애인 이동권 운동이 전개되면서 장애인의 이동과 접근권에 대한 사회적 인지가 높아졌다. 2004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최초로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에게 전동 휠체어를 보급하는 사업을 시작했고, 이어 2005년 보건복지부에서 장애인보장구 추가 급여품목에 전동휠체어와 전동스쿠터를 포함하게 되었다 [44, 45]. 장애인이동권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함께, 이를 가능하게 하는 보조기구가 확대되며 참여자들은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삶에 접속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참여자31은 타인의 도움 없이 직접 만지고, 느끼고, 구매하고, 여행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성격도 좀 더 적극적으로 변화했다고 말했다. 더불어 2008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됨에 따라 장애인 권리보장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가 구성되며 참여자31은 장애인의 권리 인식 증진을 위한 활동도 시작하게 되었다. 전동휠체어의 사용과 더불어 지하철이 생기면서 활동 반경이 넓어진 참여자28은 장애인 관련 기관에서 활동을 시작하였고 장애인 편의시설 모니터링을 하며 더 나은 물리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필요한 편의지원을 공공기관에 요구하는 등의 일을 하고 있다.

참여자31과 참여자28은 법과 제도의 변화 속에서 불평등한 상황을 문제로 바라보는 사회적 태도를 가질 수 있었으며, 자신들의 일상에 만연했던 장애인 차별에 대해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게 되었다. 즉 이들은 차별을 인지하고, 보고하고, 대응할 수 있는 ‘무대’와 만난 이후에야 자신이 원하는 삶을 꿈꾸고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1967년생인 참여자34는 장애 정도가 심한 지체장애인으로, 장애인 수첩을 발급받기 위해 10대 중반이 되어서야 소아마비 진단을 받았다. 아버지 등에 업혀 동네 한 바퀴 도는 게 외출의 전부였던 시절 참여자34는 ‘집’이 감옥과 마찬가지였다. 감옥과 같은 집에 갇혀 있던 참여자34는 의무교육인 초등학교부터 교육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학교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는지를 묻자, 그는 “학교를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연한 권리로 누려야 할 의무교육을 그는 감히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연구자: 그전까지는 이동을 어떻게 하셨어요?
참여자34: 안 했죠.
연구자: 학교에는 안 다니셨어요?
참여자34: 아니요, 안 다녔어요. 못 다녔어요.
연구자: 선생님은 학교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으셨나요?
참여자34: 학교가 너무 멀고 하다 보니까 학교 갈 엄두가 없었어요. 누가 업고 가지 않는 이상은 학교 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거든요.

성인이 된 후 재가 생활을 하던 참여자34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거주 시설에서 10여 년간 머물러야 했다. 거주 시설에서의 오랜 경험은 참여자34가 세상이라는 ‘무대’를 인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또 다른 벽이 되었다. 장애인의 구조적 차별과 관련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은 시설 거주, 바로 거주의 제약이다. 헌법 제10조에 ‘자기결정권’, 제17조에 ‘사생활과 비밀의 자유’가 보장된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거주에 관해 자기결정권을 가지지 못하고, 사생활과 비밀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하는 집단이 있다. 바로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이다. 2022년을 기준으로 하여 전국의 장애인 거주시설은 1,535개소로 30,000명 가량의 장애인이 거주시설에서 자기결정권과 사생활 및 비밀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46].

국가인권위원회가 2012년 진행한 시설거주인 거주 현황 및 자립생활 욕구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이 시설에 계속 거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시설에서 생활하는 것에 별로 불만이 없어서”(23.28%)로 나타났으며, “시설 생활이 더 편해서”라고 응답한 비율도 8.91%로 응답자의 약 ⅓ 가량이 시설 생활에 만족하기 때문에 시설에 거주하고 있다고 답변하였다 [47]. 이러한 응답은 시설거주 장애인들이 대안으로 선택할 수 있는 지역사회에서의 생활조건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구조적 차별을 인식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거주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하는 시설 거주 장애인들이 자기결정권, 사생활 및 비밀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하는 공간에서의 삶을 차별이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통계는, 차별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살아온 무대를 기존과는 다른 관점에서 인식하고 해석할 수 있는 새로운 무대와의 만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시설에서 나와 자립해 살아가고 싶다는 열망으로 참여자34는 어렵게 시설에서 나올 수 있었지만, 세상이라는 무대와 만난 것만으로 기회가 이어지지는 않았고, 여전히 취업이나 또 다른 배움의 제약이 이어졌다. 삼십대 중반이 되어서야 장애인도 공무원이 될 수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검정고시에 도전했으나 학업을 전혀 수행하지 못한 상황에서 별도의 지원 정책 없이 꿈을 쫓기란 쉽지 않았다. “가족을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어디를 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오랜 시간 생각해 왔던 그에게 검정고시와 취업은 도달할 수 있는 삶의 영역이 아니었던 것이다.

연구자: 선생님은 뭐가 되고 싶으시다거나 어떻게 살고 싶다, 이런 꿈이 좀 있으셨나요?
참여자34: 어릴 때는 가족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고 생각했죠. 나이 들어가면서 느낀 게 한 번 혼자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그 전까지는 생각이 있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죠.
연구자: 어릴 때 집에 계실 때는 독립 말고 이런 데 가보고 싶다, 이런 걸 해보고 싶다 이런 거는 잘 없으셨나요?
참여자34: 음… 어디 간다든가 이런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참여자34의 구술을 관통하는 단어는 ‘체념’이다. 교육과 이동, 노동의 기회를 실현할 수 있는 무대의 부재는 생애 전반에 걸쳐 꿈을 갖거나 관계를 형성하거나 독립하고자 하는 의지를 번번이 가로막았다. 1980년대 후반부터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고 물리적 환경과 사회적 분위기가 조금씩 변화했지만, 구조적 차별이 개인의 깊숙한 일상으로 스며들어 있을 때 자신의 법적인 권리를 인지하고 누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동, 교육, 지역사회 거주, 취업에 있어 누적된 차별의 경험은 새로운 세상과 연결되려는 시도를 여전히 가로막고 있다.

연구자: 여행 좋아하시는군요. 지금은 왜 안 가세요?
참여자34: 지금은 주로 아는 사람 만나러 서울에 간다든지 그 정도지.
연구자: 지금은 여행 다니고 싶지 않으세요?
참여자34: 예, 지금은 눈도 안 보이고 해서 그냥 좋아하는 음악 듣는다는 거 그게 좋은 것 같아요.

이처럼 구조적 차별은 차별을 정의하고 해석할 수 있는 법과 제도가 정비되기 전까지 개인이 인지하기 어렵다. 한 패러다임의 변칙 사례들을 다수가 발견하여 과학혁명이 일어나 패러다임이 완전히 전복되기 전까지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과학적 진리를 거짓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참여자들의 경험을 지금에 와서야 ‘차별’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시점에서 장애인의 교육, 이동, 노동의 제약을 차별로 규정하는 사회로 패러다임이 변화하였기 때문이다.

논점 2. 미묘하고 애매한 차별: 마이크로어그레션(microaggression)

차별 경험은 명백히 부당한 사건만이 아니라 미묘한 태도나 말투 등을 통해 일어나기도 하는데, 이를 ‘마이크로어그레션(microaggression)’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마이크로어그레션은 소외된 그룹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개인에게 가해지는 의도적·비의도적인 모욕이나 무시, 혹은 적대적, 경멸적 부정적인 메시지의 전달을 의미하며, 차별임을 명확히 인식하기 어려운 일상적인 발화와 행동, 암묵적인 전제를 통해 드러난다 [48]. 북미 지역에서 민권 운동이 발전하고 차별 관련 법제가 만들어지면서 인종에 대한 명시적 차별은 줄어드는 반면, 교묘하고 모호한 방식으로 대인관계에서 인식하기 어려운 형태의 차별이 증가하는 현상을 포착하고 분석하고자 했다.

Sue et al. 은 인종적 소수자가 경험한 다양한 형태의 비가시적인 차별 행태를 표현하는 마이크로어그레션 개념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구분하기 위해 세 가지 영역을 제시했다 [48]. 첫째, 미시적 공격(micro-assault)은 놀림이나 괴롭힘과 같은 명확한 모욕 행동이나 언어적 행위로 의도가 반영된다. 둘째, 미시적 모욕(micro-insult)은 소수자를 모욕하는 대인관계 상호작용을 의미한다. 이는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모욕, 무례함, 무시로 표현되지만, ‘칭찬’의 형태로 표현될 수도 있으며, 특정한 집단의 개인에게 눈을 맞추지 않는다거나 몸을 돌려 상대를 등지는 등 비언어적 행태로 드러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미시적 무효화(micro-invalidation)는 무의식적으로 소수자의 심리적 감정, 생각, 축적된 경험, 현실을 부정하거나 무효화하는 언어적 행동을 통해 발생한다. 백인 중심사회에서 백인이 가지는 특권을 고려하지 않고 소수 인종 집단 개인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로 게으르거나 충분히 열심히 일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비난하는 언행을 예로 들 수 있다 [48, 49].

마이크로어그레션은 가해자가 속한 사회의 편견을 무의식적으로 상속하는 과정에서, 선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의 가정, 믿음, 가치 안에 은밀한 형태로 차별이 숨어 들어가 그 차별의 동기를 식별하기 어렵고 차별이라고 인식하기에 미묘하다는 특징이 있다 [49]. 이렇듯 마이크로어그레션은 차별이라 분명히 말하기 애매한 불확실한 행동으로 나타나므로 대응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피해자가 차별의 상황에서 어찌 대응할지 모르거나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할 때 자아존중감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으며, 반대로 그러한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이를 문제 삼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 ‘예민하고 강박적인’ 사람으로 여겨지곤 한다 [49]. 결국 피해자는 문제를 제기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일상에서 만연하게 발생하는 마이크로어그레션의 경험이 축적되면 우울증이나 정신 질환을 겪을 수 있으며, 심리적인 불안감이 높아지는 등 전반적인 건강상태에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미묘한 형태의 차별 경험을 인지해 기록하고 분석해야 한다 [50, 51].

장애인이 경험하는 마이크로어그레션은 다른 소수자 집단과 유사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비장애중심주의(ableism)와 결합하여 일상적으로 좀 더 미묘한 형태의 차별을 유발하기도 한다. 비장애중심주의의 본질은 능력주의에 기반한다 [52]. 신분이나 계급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에 따라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는 능력주의의 관점은 일견 합리적이고 타당하다. 그러나 능력주의는 능력이 오로지 개인의 노력과 재능만이 아니라 선천적 기질이나 시대적·사회적 환경 따른 결과임에도 능력에 따른 차등 대우를 용인하여 사람들 간의 불평등한 관계를 만든다. 게다가 장애란 손상, 기능, 활동과 참여, 개인적·환경적 특성 등 복합적인 구성요소의 상호작용으로 발생함에도 능력주의 관점에서는 개별 장애인의 손상이나 기능 저하에만 초점을 맞추어 이를 결함으로 간주한다. 특히나 한국 사회와 같이 개인의 능력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회에서는 장애인을 장애의 맥락에서 동떨어진 개별적 존재로 분리시키고 무능력한 존재로만 낙인찍을 위험이 크다. 그리고 이는 장애인을 향한 차별의 ‘합리적인’ 근거로 작용한다.

Keller & Galgay는 장애 마이크로어그레션 측정 방법을 연구하였는데, 사생활의 부정, 2차적 이익(장애인에게 어떤 것을 해주었을 때 칭찬받기를 기대함), 유아화(장애인을 동등한 구성원으로 인지하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결정을 대신하거나 도움을 주려는 태도) 등의 영역이 있다 [53]. 이와 같은 연구를 종합하여 Adyenmir-Doke & Herbert는 에이블리즘 마이크로어그레션 영향 설문(AMIQ; Ableist Microaggressions Impact Questionnaire)을 개발하였다 [54]. 이 설문에는 ‘장애를 극복하고 삶을 계속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장애가 있는 사람은 모두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내가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한다’와 같이 장애인에 대한 낮은 기대 및 과도한 도움 등을 측정할 수 있는 문항이 포함되어 있다.

국내에서 마이크로어그레션은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 [55, 56],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 연구 [57, 58] 등이 주로 이루어졌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마이크로어그레션 연구는 고등교육 경험에 관한 질적 연구가 진행된 바 있다. 장애인의 대학원 경험에 관한 질적 연구에서 참여자들은 명시적인 장애 차별을 거의 경험하지 않는다고 언급했으나, 대학원 내의 위계 구조 내에서 대응하기 어려운 종류의 애매한 장애 차별, 예컨대 의사결정에서 배제되거나 동등한 동료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험을 한다고 언급했다. 공적 체계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하는 장애인 대학원생들은 ‘동등한’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무능력하다고 여겨졌다. 즉, 비장애인중심주의에 기반한 마이크로어그레션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9].

본 연구의 참여자들은 주로 노동시장 내에서의 마이크로어그레션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여자들의 노동시장 참여 양상은 장애인의 노동시장 참여를 증진하는 제도적 변화와 공명하며 변화하였다. 장애인 의무고용률이 꾸준히 증가하였고, 중증장애인의 고용을 증진하는 제도적 장치들도 생겨났다. 2010년대 노동시장에 진입한 참여자들에게 특히 공공부문 일자리들을 얻을 기회가 좀 더 많아진 모습이 나타났다.

제도적 변화와 더불어 장애인의 일자리는 늘어났으나 노동시장 내에서의 장애인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다. 물론 「 장애인차별금지법 」 , 「장애인 등의 편의증진법」 등의 시행으로 직장 내에서 물리적 제약들이 줄어들거나, 최소한 차별을 구제할 수단이 생겼다. 근로지원인 제도 등 장애인 근로자를 지원하는 제도가 실시되며 사업장에서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는 합의도 느린 속도로나마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노동 경험이 있는 참여자들은 노동시장 내에 여전히 간접적이고 비가시적인 차별의 기제가 존재한다고 언급했다.

기대에 맞지 않았어요, 인턴 생활이. 그냥 가서 있었거든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것. 가서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있는 것. 다니는 목표라든가 그런 걸 줬으면 좋겠는데, 그냥 있으라고 하는 거예요. 너는 그냥 장애인 채용 머릿수 채우러 온 사람이다, 그런 느낌으로 그냥 있으라고. 그러면 나는 그냥 여기서 장애인으로만 존재를 해야 되는 건가? 나도 일을 할 수 있고,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는 건가? 그런 생각으로 빠졌던 것 같아요. (참여자16)

소수자에 대한 직접적 차별을 금지하는 강력한 법과 제도들이 정비된 사회에서 차별은 좀 더 은밀하고 회피적인(aversive) 형태인 마이크로어그레션으로 변모되어 나타난다. 채용 후 업무를 맡기지 않는 형태의 차별은 ‘장애인이 업무를 수행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숨겨진 메시지를 함축하는 것이다. 이러한 미시적 차별은 피해자의 심리적 안녕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60]. 하지만 장애인 채용 거부처럼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일상적인 공간 내에서 경험하게 되는 차별이므로 참여자들은 이를 차별이라고 인식하기 쉽지 않다.

마이크로어그레션은 노동시장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담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참여자5의 언급처럼 ‘장애인은 일하지 않고 빈둥빈둥 돌아다닌다’는 부정적인 편견에서 적대적인 표현으로 발화되는 경우도 있지만, 때때로 선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의 편견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 차별을 인식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경우도 있다. 휠체어를 타는 참여자24는 지하철에서 타인에게 돈을 받는 상황을 종종 경험한다고 말했다. 장애인은 도움이 필요한 불쌍한 존재라는 편견이 평범한 사람들의 가치 체계 안에 포함되어 있을 경우, 이것이 불필요하게 장애인에게 도움을 주는 형태의 마이크로어그레션으로 표출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이 시간 내에 약속이 있어서 어디를 가거나 직장을 간다고 생각하지 않고 되게 빈둥빈둥 돌아다닌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출퇴근 시간에 좀 기어나오지 말지 이런 말들을 하거나 뭐가 바빠서 지금 전철을 타, 이런 데 나오지 말고 한가할 때 나와서 타지, 이런 분들 되게 지금도 많아요. (참여자5)
지하철에서 이제 돈 주는 유형도 조금 되게 많아. 그때도 지하철이 있었어. 지하철에서 할머니가 돈을 천 원을 주는 거예요. 딱 옆에 앉았는데 할머니가 천 원을 주는 거예요 저 돈이 있어요 했더니, 돈을 쑥 집어넣더니 천 원이 작아서 그래? 열심히 살아 하면서 만 원을 주면서 내리시는 거예요. (참여자24)

이러한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장애인이 경험하는 마이크로어그레션은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형태의 에이블리즘에서 근거하여 일어나는 차별이기 때문에 개념화하기 어려우며, 이 때문에 마이크로어그레션에 관한 개념적 탐구와 척도 개발은 다른 차별의 영역에 비하여 늦게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차별을 경험하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마이크로어그레션은 때때로 친밀한 관계나 선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로 인식하기 매우 어렵다. 마이크로어그레션을 경험했을 때 피해자들은 자신이 지나치게 예민한지를 의심하며 차별의 원인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찾게 되고, 이로 인해 차별에 대응하기도, 대응하지 않기도 어려운 딜레마에 몰릴 수 있다.

논점 3. 차별당할 상황으로부터의 배제: 회피와 포기

‘경험적 회피(experiential avoidance)’는 소수자들이 차별 등 부정적인 개인적 사건과의 접촉을 꺼리고 경험의 형태나 빈도를 바꾸려는 시도로 정의된다 [61]. 경험적 회피에 관한 연구는 주로 인종적 소수자 및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진행되어 왔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등 인종적 소수자는 인종 차별의 가능성이 높은 장소나 사람을 전략적으로 피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3]. Bird & Bogart는 병원에서 차별을 받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아플 때에도 백인 의사에게서 차별을 받는 것이 두려워 병원에 가는 것을 회피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62].

트랜스젠더 대상 연구에서는 탈의실을 이용하는 것과 같이 거절이 예상되는 상황이나, 차별이나 폭력을 경험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에 체육관이나 공공 화장실 이용을 회피하는 전략을 활용한다고 보고하였다 [63]. 차별 측정에 있어 이러한 회피와 포기는 중요한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위에서 언급한 연구에 참여한 트랜스젠더에게 지난 1년간 체육관이나 화장실 이용에서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는지 질문을 한다면, 그들은 차별을 경험한 적이 없다고 답할 수 있다. 혹시라도 발생할지 모르는 차별에 대한 두려움에 이용 자체를 회피하여 차별당할 상황 자체로부터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트랜스젠더 268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연구는 병원 방문이나 구직과 같은 12개의 일상 상황에서 차별에 대한 두려움으로 상황을 회피한 적이 있는지 확인하고, 그러한 경험이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와 연관되어 있음을 보고한 바 있다 [64].

장애인 차별 연구에서도 회피와 포기는 비슷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장애인의 회피에 관한 연구는 Temple et al. 의 호주 장애인 대상 연구에서 진행된 바 있다 [65]. 연구자들은 ‘장애 배제(disability exclusion)’의 개념을 장애 차별과 장애 회피로 구분한다. 장애 회피의 경우 ‘지난 12개월 동안 귀하의 장애 때문에 (직장, 가족이나 친구 만나기, 학교, 병의원, 가게 등) 상황을 회피한 적이 있는가’를 질문하였다. 연구 결과는 이동과 감각에 어려움이 있는 장애인과 어려움이 없는 장애인으로 구분되었는데,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이동과 감각에 장애가 있는 장애인이 12개월간 회피한 비율이 유의미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가장 빈번하게 회피한 영역은 가족이나 친구 만나기(39.2%), 가게나 은행 이용(37.0%), 대중교통 이용(36.4%) 등이었다.

본 연구의 참여자들 역시 불편한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외출하지 않거나, 취업하지 않거나, 사람을 만나지 않는 등의 경험을 구술하였다. 장애인 관련 기관에서 근무하는 참여자28은 출퇴근이나 외출 시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저상 버스를 타는 것이 하나의 권리라고 생각하지만 ‘미안한 권리’라고 응답했다. 버스 요금을 내고 이용하지만 탑승과 하차 시 시간이 많이 걸리고 휠체어로 인해 버스 내부가 좁아져 주변 사람을 의식하게 되면서 민폐라고 느끼게 되었다. 휠체어에 앉아 줄을 서야 하다 보니, 버스 기사의 시야에서 벗어나 버스가 그냥 지나칠 때도 있었으며 이미 사람으로 꽉 차 버린 버스에 탑승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참여자28은 점차 저상버스를 이용하는 일을 회피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저상버스는 휠체어나 교통약자들 태우는 거잖아요. 그러면 타고 내릴 때 좀 시간이 걸리거든요. 근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 좀 시간 배차간격을 좀 넉넉하게 주면. 탈 때도 저 같은 경우는 좀 미안한 마음이 들거든요. 그게 리프트가 작동이 잘 안 돼서 잘 못 해서 막 이랬다 저랬다 막 하다 보면은 막 몇 분씩 소요되고 하니까 그 되게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타게 되고 일반 승객들도 뭐라고 하기도 하고 그러더라고요. (참여자28)

2023년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 연구(국토교통부, 2024)에 따르면, 시내버스 기준 저상버스 도입률은 38.9%이며 농어촌버스 3.2%, 마을버스 16.2%로 상당히 낮은 수준에 그친다 [66]. 따라서 저상버스 배차시간이 길 수밖에 없으며, 버스 정류장의 시설도 휠체어 사용자에게 좁고 접근 가능하지 않아 버스 이용을 포기하고 다른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등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2005년 제정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에 따르면 버스 정류장을 휠체어 사용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개편할 것을 명시해 두었지만, 실제로 정류장에서 기다릴 수 없어 버스를 이용할 수 없다.

접근용이한 화장실의 부재 역시 외출을 포기하게 만들거나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만 외출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동했다. 참여자31은 직업상의 이유로 여러 지역을 이동해야만 했는데, 공중 화장실이 잠겨 있고 청소도구가 적재되어 있거나 고장이 나서 사용할 수 없는 경험이 축적되면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졌다. 다른 참여자들 역시 접근 가능한 화장실 사용이 어려워 외출 횟수를 줄이고, 화장실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운 새로운 장소에서는 만남을 회피했으며, 여행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 언니는 이제 복지관 같은 곳에서 여행 가잖아요. 그러면 가기 하루 전부터 물을 안 먹어요. 커피도 엄청 좋아하는데, 커피 안 마셔요. 음식도 안 먹고 물도 안 마시고 여행 가는 즐거움이 아니라 되게 고통스럽게 갔다가 고통스럽게 오고 그 언니는 어딜 가나 화장실이 어떤가(생각해요). 유독 좀 그런 심해요. 그래서 화장실 불편하다 그러면 안 가요. 아예 안 움직여요. (참여자31)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것이 미안하고 감정을 살피거나 눈치를 봐야 했던 경험의 축적은 관계의 단절로 이어졌다. 청소년기 교실 이동과 화장실 사용에 늘 도움이 필요했던 참여자28은 결국 학교를 그만두었고 장애로 인한 어려움을 알리고 싶지 않아 비장애인 친구와는 연락을 모두 끊었다. 20대 때만 하더라도 관계 형성에 적극적이었던 참여자33은 약속 당일에 취소되는 일이 반복되자 거절의 두려움이 축적되면서 먼저 약속을 잡는 것을 포기했고 점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연구자: 어릴 때 이동을 많이 못하셨는데, 주위에 교우 관계나 친구 관계는 좀 어떠셨어요?
참여자28: 다 단절됐어요. 다 연락 끊고 그래서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좀 후회스러워요. 사춘기 때 예민한 시기에 생리적인 거, 이동 그런 것 때문에 내가 누려야 될 것들을 정리를 했잖아요. 스스로, 또 누군가랑 상의할 상대도 없었고 혼자서 그냥 고민고민하다가 힘들어서 정리를 한 거라서 친구들한테도 말하기도 쉽지 않았어요. 자존심도 있고 그러다 보니까 놀러 오는 것도 싫고 동정 받는 거 같고 뭐 해가지고.
연구자: 주로 만나는 분들은 어떤 분이세요?
참여자33: 거의 사람을 만나지 않거든요. 저는 관계를 많이 맺고 싶은데, 상대방 기분을 좀 살피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다음에 구체적인 시간을 정하지 않고 다음에 밥 한 번 먹자 하면 보기 싫어 하는구나 생각을 하고 연락을 안 하는 거죠.

척수성 근위축증을 앓고 있는 참여자26은 필요할 때 화장실을 가지 못해 갑작스럽게 길거리에서 신변 처리를 했거나 장시간 외출 시 장애인 콜택시가 잡히지 않아 오랫동안 오줌을 참아 방광염까지 걸렸던 고통스러운 경험이 축적되면서 구직을 주저하게 되었다. 더욱이 화장실 사용에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데 친구가 자신을 변기로 옮기다 다리뼈가 부러지기도 했으며 기저귀를 차도 자꾸만 새거나 생식기 질환에 걸리게 되면서 화장실 사용의 불편함으로 인해 취직을 하지 못하고 있다. 취업의 제약은 정신장애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정신장애인 동료지원가로 활동하고 있는 참여자1은 ‘일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정신장애인이 쉽게 이해받기 어려워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기 때문에, 현재 하고 있는 일 외에 다른 선택지를 피할 수밖에 없다고 구술했다.

지금 머릿속에 그 생각밖에 없어요. 어떻게 해야 화장실 가기가 편할까. 지금도 취업 생각을 했는데, 장애인고용공단 취업 공고를 본 게 월요일인가 그래요. 오늘 화요일이잖아요. 어제 봤어요. 그래서 어제 취업을 해 봐야겠다 이런 마음을 먹었는데 갑자기 화장실에 갈 생각을 하니까... (참여자26)
정신장애인들이 심리적인 문제, 정서적 문제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으니까 일반 취업이 어렵거든요. 일반 취업을 하면 경쟁이 붙을 때도 있고 눈치 보는 상황이 더 많아지고, 그러면 위축되고 못 견디면 퇴사하고 그런 게 있거든요. 저도 경험을 해봤는데 살벌해요. 일반 취업을 하면(다른 사람들이) 세게 말하면 같이 세게 말할 줄도 알아야 되는데 저희는 위축되고 피하고 싶고 숨고 싶고. (참여자1)

경험적 회피에 관한 연구가 어려운 까닭은 차별의 상황을 포기하거나 회피하면서 차별을 경험하지 않아 일견 차별 수준이 낮은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나 이전에 직접적으로 경험한 차별 혹은 주위 사람들이나 언론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한 차별의 경험이 포기와 회피의 동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연구자들은 반드시 개인이 어떤 상황을 회피하거나 포기했는지 그 원인과 맥락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장애인의 차별에 관한 연구는 장애인이 생애과정 속에서 경험해 온 차별 경험을 종단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으며, 이와 함께 현재 경험하는 차별과 경험적 회피를 함께 측정해 그 상호관계를 탐구하여 차별의 복잡한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논점 4. 발화되지 못한 차별: 인지와 보고의 어려움

차별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차별을 경험하는 사람이 차별을 인식하고 보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차별 경험을 인지하고 보고하는 복합적인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Krieger는 네 가지로 정리한 바 있다 [1]. 첫째,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와 같이 사회적, 물질적으로 취약한 소수집단에 속한 구성원들은 자신들을 향한 부정적이고 차별적인 시선이나 목소리를 내면화하는 경향이 있다. 부당한 대우를 당했더라도 차별로 인지하지 못하고 당연한 것으로 인지하는 것을 “내면화된 억압(internalized oppression)”이라고 한다. 둘째, 소수 집단은 지배 집단이 부여한 차별적 특성을 긍정적으로 수용해 차별을 인식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은 줄곧 성적 대상이 되었는데, 일부 여성들은 이를 여성 특유의 힘으로 여기기도 했다. 셋째, 차별적 문화와 인식이 확산된 사회에서 소수 집단은 차별을 경험했음에도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우려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socially acceptable)” 응답과 대응을 한다. 가령 한국 사회에서는 회사나 친밀한 집단 내에서 발생한 성적 괴롭힘이나 성폭력을 최근에 와서야 공적으로 논의할 수 있게 되었다. 여성을 향한 성적 괴롭힘은 오랫동안 존재했지만 그것을 공공연하게 알리지 못했고 이해받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지 못해 당사자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다. 넷째, 일부 개인들이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 차별 경험을 사회 구조의 문제로 돌리거나 과장되게 보고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장애인 차별 연구에서 차별의 경험과 그것을 인지하거나 보고하는 것 사이의 간극은 차별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주제이다. 예컨대 라틴계 미국인의 차별 경험을 연구한 Roth는 뉴욕, 푸에트토리코, 산후앙으로 이주한 이주민의 인종 차별 경험을 심층 인터뷰로 파악하고자 하였다 [67].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인종 차별을 겪은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불공정한 대우를 사회적 계층과 경제적 지위 때문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심도 있는 추가 질문을 던졌을 때 참여자들을 자신들도 미묘한 인종 차별을 겪었음을 인정하였고 관련 경험을 천천히 회고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설문조사나 간단한 인터뷰를 통하여 개인이 차별을 ‘인식’했는지 파악하는 것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참여자들이 사회적 계층 등 다른 요인에 집중하여 자신의 차별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에서 다차원적인 차별을 경험하는 장애인 역시 자신이 경험한 ‘장애’ 차별을 충분히 인지하기 어려울 수 있고 설문조사 등으로 이를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다.

차별의 측정 과정에서 ‘보고’되지 않았더라도 차별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판단할 수 없음을 Yoon et al.의 연구가 논증하고 있다 [68]. 연구자들은 한국노동패널조사 데이터를 랜덤 포레스트 모형으로 분석하였다. 현재 임금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이들에게 ‘채용 과정에서 차별을 경험한 적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고 이에 대해 예/아니오로 대답한 응답자들의 데이터를 이용해서 차별을 경험했는지 예측 모형을 구축하였다. 그 모형을 이용하여, 현재 이미 취업이 된 상태이기 때문에 이 질문에 예/아니오로 답해야 하지만 ‘해당 없음’으로 대답한 이들의 차별 경험을 예측했다. 그 결과 ‘해당 없음’으로 대답한 응답자의 고용차별 예측률이 예/아니오로 응답한 이들의 고용차별 경험률보다 높게 나타났다. 저자들은 이러한 연구 결과가 취약 계층에 소속된 개인들이 자신의 계층이 차별을 경험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차별 경험을 숨기는 경향에서 기인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또한 차별 피해자 중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고통스러우므로 자신의 경험을 과소보고할 수 있다고 언급한다. 이 연구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아니지만, 한국 사회에서 대표적으로 계층적인 차별을 경험하는 장애인의 경우 자신의 차별 정도를 과소보고할 가능성이 존재함을 시사한다.

그러나 보고하지 않은 차별 경험 역시 인간의 몸에 상처를 남긴다. 인종차별의 건강 영향에 관한 연구에서 인종과 관련하여 불공정한 대우를 받아들이고 인종차별을 경험하지 않았다고 보고한 노동계급 흑인의 수축기 혈압은 불공정한 대우에 이의를 제기하고 인종차별을 경험했다고 보고한 사람들과 비교할 때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났다 [33]. 즉 보고되지 않는 차별도 몸에 각인되어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고 보고되지 않은 차별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차별의 인지와 보고 문제 이외에도 장애인은 비장애인 중심으로 구성된 척도로 차별을 측정하는 과정에서 불이익을 경험하여 차별 측정에 온전히 참여하기 어려울 수 있다. 특히 발달장애인이나 정신장애인 등 인지적·정신적 장애를 가진 장애인은 차별의 보고 과정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경험한다. Shogren et al. 은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을 지적한다 [69]. 지적장애인의 인지적 어려움으로 인해 자기 보고식 설문조사에서 신뢰성과 타당성 문제가 종종 지적되곤 한다. 설문 응답에 대한 일관성과 정확성에 대한 우려도 있다. 이 때문에 보통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은 보호자나 지원자가 대리 응답하는 방법이 활용되는데, 대리인을 통한 응답은 당사자의 주관적 경험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특히 차별 경험과 같이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다는 것에 대한 본인의 자각이 중요하며, 보고가 고통스러운 과정이 될 수 있는 문항 답변에서 인지적·정신적 장애를 가진 답변자는 어려움을 경험할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설문을 단순화하고 그림이나 상징을 이용해 질문을 시각적으로 제시하는 방법, 응답 방식을 다양화하는 설문 도구 개발의 방법 등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발달장애인 당사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및 인터뷰에서는 당사자의 조사 참여 수준에 대한 근거와 신뢰성 확보가 반드시 필요하며, 설문조사는 조사 기획 단계에서부터 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2020년부터 ‘발달장애인 일과 삶’ 실태조사를 통해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삶 전반 및 환경을 조사하고 있는데,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고안하고 실천하고 있다. 이 실태조사에서 발달장애인과 보호자를 연계해 조사하는 쌍체 조사 방법을 진행하는데, 발달장애인 당사자에게는 본인에게 꼭 질문해야 하는 욕구나 만족도 등의 항목을 위주로 질문해 응답 부담을 경감하고자 했다. 조사 참여 가능 수준에 따라 ‘보통 읽기 자료 그룹(Plain Language Group)’, ‘읽기 쉬운 자료 그룹(Easy to Read Group)’과 ‘그림 상징 그룹(Graphic Symbols Group)’으로 나누어 조사한다. 당사자의 참여를 기반으로 응답 결과 및 반응, 의견을 수렴해 타당도와 난이도를 검토하고 개선하는 리빙랩 방식을 적용해 발달장애인이 직접 문항 개발에 참여하고 검수하는 과정을 거친다.

또한 정신장애인의 경우에 당사자의 평가와 판단을 의심하는 시선이 차별을 비롯하여 당사자의 경험에 대한 인지와 보고를 불신하는 태도로 이어지곤 한다. 기존의 정신건강 의제에서 주류 관점이던 의학 중심적 담론에서는 정신장애인의 건강 증진, 사회로의 복귀는 정신질환과 증상의 치료로만 가능하다고 여겼으며, 이러한 관점 아래 치료 과정에서 정신장애인의 의견을 수용하기보다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약물 복용이나 강제 입원이 이루어졌다 [70, 71, 72]. 정신장애인의 판단에 대한 불신은 정신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를 수행하는 데에도 반영되었는데, 행복감이나 삶의 만족 등에 관한 정신장애인의 자기 보고가 정신장애인의 객관적인 상황을 드러내지 못하며 전문가의 평가를 통해 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논쟁이 있어 왔다 [73, 74].

그러나 1970년대 이후부터 정신장애의 회복모델 관점이 발전함에 따라 정신장애인의 주관적 인식을 존중하는 시각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75, 76]. 회복모델에서 회복이란 정신과적 증상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더라도 일상생활의 기능을 유지하며 목표나 신념,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으로 설명된다 [76]. 이에 따라 정신장애인은 전문가의 판단에 의지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정신과적 증상을 겪고 있음에도 자신의 일상을 통제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 나가는 주체로 인정되었다. 이에 더하여 장애인권리협약의 내용을 바탕으로 정신장애인 또한 자신의 상황에 관해 인식하고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존재로서 권리보장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77]. 정신장애인의 차별 경험에 있어서 당사자의 경험과 주관적 인지를 존중하고 이를 보고하고 파악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

논점 5. 장애인이기도 한 존재의 차별: 교차성

Crenshaw는 흑인 여성의 고유한 차별을 드러내기 위해 ‘교차(intersection)’ 또는 ‘교차성(intersectionality)’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78]. 예를 들어, 흑인여성의 경우 기존의 단일축 분석틀(single-axis analysis)에 의존해 차별을 해석한다면 흑인여성이 경험하는 차별을 ‘흑인(남성)’의 인종차별로 간주하거나 ‘(백인)여성’으로서의 성차별로 분석하는 제한적인 틀이 흑인이자 여성인 이들이 ‘흑인여성’으로서 경험하는 특수한 차별의 구체성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한다는 모순에 빠진다고 지적했다.

Crenshaw는 교차성에 대한 고려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교차점에 놓인 개인이 경험하게 되는 어려움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사례로, 데그라펜레이드(DeGraffenreid) 대 제너럴 모터스 소송 사건의 예를 든다 [78]. 제너럴 모터스 사는 경기불황이 심각해지자 백인남성, 흑인남성, 백인여성 다음으로 고용된 흑인여성의 근속년수가 가장 짧다는 이유로 해고했다. 1964년 민권법 제정 이전까지 고용이 극도로 제한됐던 흑인여성 근로자들은 근속년수 체계가 차별을 영속화한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 사건이 인종차별인지 성차별 사건인지 구분해야 하며 병합할 수 없다고 소송을 기각했다. 흑인이자 여성으로서의 차별 경험을 단순히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산술적으로 결합한 것으로 볼 경우 이들이 경험하는 독특한 차별의 층위를 선명히 이해할 수 없게 됨을 드러내는 사례이다. 따라서 교차성은 인종과 젠더 뿐만 아니라 장애, 계층, 이주민 등 주류화되지 않은 정체성을 가진 존재들의 차별 경험을 실질적으로 이해하고 다층적으로 분석할 때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하는 개념이다.

장애와 교차하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연구 중 가장 대표적으로 장애여성이 경험하는 다중 차별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 왔다. 장애여성은 장애인과 여성에게 가해지는 차별을 중복적으로 경험하며 교육, 고용, 소득과 같은 분야에서 더욱 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79]. 게다가 장애여성을 향한 차별은 단기간에 그치는 것이 아니며 생애과정 전반에서 여러 유형의 차별이 연쇄적으로, 중첩되어 일어나 장애여성이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배제당하도록 한다 [80]. 그럼에도 장애여성은 장애계에서도 여성계에서도 비가시화되어 주변부로 밀려나 관련 의제가 충분히 논의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현상이 한국의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로 인해 여성이 겪는 어려움이 가벼운 문제로 취급되었으며 그간 장애운동이 남성중심적으로 조직되어 사회환경적 개선을 요구할 때 장애여성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81, 82].

선행연구에서 가장 많이 다루어지는 장애여성의 교차적인 차별의 경험은 육아의 경험이다. 장애여성은 ‘장애인’으로서, 또한 육아를 하는 ‘엄마’로서의 차별을 동시에 경험한다. 실제로 본 연구에서 육아를 하는 장애여성의 경우 큰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여자25의 경우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가 실시되기 전 어머니의 도움을 받고자 했으나 여의치 않아서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를 해야 했던 어려움에 대하여 토로하였다. 참여자31 역시 장애인과 아동의 돌봄 서비스가 부재한 상황에서 혼자 아이의 진료 등을 받기 어려워 주위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육아를 했던 경험을 떠올렸다. 참여자31은 치과 진료를 제때 받지 못하여 자녀가 성인이 되어서도 이가 안 좋다는 사실에 대하여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였다. 장애여성으로서 겪은 육아의 어려움은 장애인 돌봄 제도와 서비스의 부재에서 기인한 것임에도, 이들은 육아를 수행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였다.

이러한 경험은 단지 ‘장애를 가진’ 부모의 어려움이 아니라, 육아의 책임을 전적으로 져야 하는 존재는 ‘엄마’라는 성별화된 돌봄 규범이 장애라는 조건과 결합되며 나타나는 차별의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 즉, 장애여성은 돌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위치에 있으면서도, 돌봄 수행이 어렵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한’ 존재로 인식하고 자책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단순한 제도 부족이 아니라, 장애여성에게 비가시적으로 전가되는 젠더화된 돌봄 책임과 감정노동의 구조를 반영한다.

친정엄마가 계셨지만 친정엄마는 저희 오빠의 아이를 키워주고 있어서 저희 오빠 아이랑 저희 딸이 한 살 차이거든요. 그래서 엄마가 한 번씩 와서 좀 봐주려고 하면 우리 조카가 너무 시샘을 부려서 너무 우니까 그래서 제가 그냥 엄마 오시지 말라고 해서 저희 아기 아빠가 직장을 그만두고 딸을 키웠죠. 눈물겹게 키웠죠. 그러다가 우리 아들은 활동지원 제도가 생겨서 몇 시간 줘서 목욕도 시켜주고 그렇게 도움을 받아서. (참여자25)
우리 치과 못 가가지고 우리 아들 막 그런데 예방접종 하고 그럴 때 아기 때는 예방접종 해야 되잖아요. 그런 것도 막 친구 아는 애가 와서 이렇게 걔가 안고 나는 이렇게 해서 나가서 택시 타고 병원 가고 막 그랬죠. 우리 아들 이가 안 좋아요. 치료를 잘 못 받아가지고. (참여자31)

출산과 육아에서의 차별 이외에도 장애여성은 생애과정에서 다양한 차별을 경험한다. 먼저 아동, 청소년기부터 비장애인뿐 아니라 장애남성과 비교할 때도 교육의 기회에서 소외당하여 학업을 중도 포기하는 등 교육권이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83]. 장애여성의 교육 차별은 참여자31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장애여성인 참여자31은 오빠들이 전부 다 학교에 가는 상황에서도 혼자 학교에 갈 수 없었다. 참여자31은 학교에 가지 못한 것이 늘 마음의 한이 되었다고 이야기하였으며, 결혼을 하고 40대가 되어서야 검정고시를 보고 사이버대학교를 졸업하여 학위를 받게 되었다고 말했다. 일견 차별 경험이라고 해석 가능한 이 구술을 참여자31은 “몸이 불편하니까”, “학교가 멀어서”, “업고 다닐 친구도 없고”로 이야기하며, 장애를 가진 여성으로서 경험한 차별로 바라보기보다는 개인적, 시대적 상황 속에서 불가피한 경험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그러나 구술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참여자31이 학교를 다니기 위해 오빠의 도움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던 점, 그리고 여성으로서 화장실 이용 등에서 타인의 도움 없이는 학교생활이 어려웠다는 점에서, 장애와 성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의 교육 배제 경험으로 해석될 여지를 제공한다. 당시 학교라는 공간이 장애남성보다 장애여성에게 더 높은 진입 장벽을 가졌을 가능성과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지원의 부재가 교육 기회 박탈로 이어졌다는 점은 교차성의 관점에서 해석될 필요가 있다.

우리 엄마가 그냥 그런 거는 네가 몸이 불편하니까 중학교까지는 무리고 그냥 한글만 떼라. 그래가지고. 이제 무주 이렇게 시골에 있다가 무주라는 곳으로 이사를 이제 갔는데 거기는 이제 학교가 멀어요. 그래서 그리고 또 업고 다닐 친구도 없고. 이렇게 오빠들은 다 먹고 살아야 되니까 나가서 이제 일해야 되고... (참여자31)

교육의 장벽을 넘은 이후에도 장애여성이 경험하는 차별은 취업과 경제활동에서도 이어진다. 장애여성은 장애인으로서 비장애인 여성보다, 여성으로서 장애남성보다 고용률이 낮았으며 소득 또한 그들보다 낮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84]. 심지어 정부 차원의 보조금 지원이나 프로그램 참여에 있어서도 여성장애인은 남성 장애인보다 적은 비율을 제공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79]. 또한 결혼생활에 있어 가부장적 관념의 영향으로 인해 출산과 양육, 가사노동의 전적인 책임을 강요받곤 하였으며, 성폭력 및 가정폭력의 위험에도 크게 노출되었다 [83]. 이러한 여러 요인이 작용하여 장애여성은 주관적 건강상태, 가족생활, 전반적 생활에서 만족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80].

실태조사를 통한 최근의 통계 결과에서도 장애여성의 차별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 2020년 장애인실태조사에 의하면 취업상태와 관련하여, 장애남성의 고용률은 38.7%인 반면 장애여성은 17.1%로 장애여성의 취업자 비율이 장애남성에 비해 2배 이상 차이 나게 낮았다 [85]. 또한 여성장애인으로서 특히 어려웠던 점을 조사한 결과 취업 등 경제적 자립 어려움이 22.5%로 높게 나타나 경제적 자립 지원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85]. 2023년 장애인삶 패널조사에서는 장애여성이 장애남성에 비해 집안일과 아동 양육에 더 오랜 시간을 할애하며 더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통해 가정 내에서 장애여성에게 가사노동과 양육의 더 큰 책임이 부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86].

장애와 결합하는 또 다른 교차성의 범주로 퀴어의 경험을 살펴볼 수 있다. 장애를 가진 퀴어 역시 장애 차별과 퀴어 차별을 모두 경험하는 구조에 놓여 있다. 장애가 없는 퀴어와 비교할 때 장애를 가진 퀴어는 퀴어 공동체에 접속하려고 할 때 큰 어려움을 경험하는데, 이는 장애인이 무성적인 존재로 간주되거나, 유성애자라면 이성애자로 인식되어 퀴어 문화 안에서도 배척당하기 때문이다 [87]. 이러한 요인에 의해 퀴어인 장애인은 자신의 성적 지향, 성 정체성을 탐색하고 표현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퀴어 장애인으로 자신을 정체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한국에서는 박영의 생애사 연구를 통해 퀴어이자 장애인으로 정체화한 연구대상자의 생애를 분석하여 퀴어 장애인의 존재를 가시화하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88]. 연구에 의하면, 연구참여자들은 학교나 시설에서 경험하는 차별이나 장애인 혐오 표현에 맞서며 자신의 정체성을 수용하는 과정을 거쳤지만 퀴어 커뮤니티와 장애인 커뮤니티에서 모두 배제되며 퀴어 장애인으로 정체화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그들은 이러한 차별에 맞서 자신을 수용하는 커뮤니티를 찾아 퀴어와 장애가 교차하는 활동을 이어나갔고, 퀴어 장애인으로서 독특한 존재로 자신을 받아들인다. 이윽고 자기 자신의 고유한 존재로 수용되는 관계와 공동체를 만들고 정상 가족뿐 아니라 돌봄을 주고받는 다양한 형태의 관계를 상상하며 미래를 그렸다.

본 연구의 참여자 중에서도 ‘논 바이너리(non-binary) 트랜스젠더’로 자신을 명명하는 참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중복장애를 가진 장애인인 동시에, 장애로 인해 다양한 만성질환을 경험하고 있었다. 질환 때문에 몇 해 전 자궁 적출 수술을 하기도 했다. 환자이자 장애인으로 병원에서 치료나 수술을 받고자 할 때 거절당했던 경험을 회고하며, 트랜스젠더로 수술을 받고 싶지만 장애인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 때문에 수술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이자 퀴어이기 때문에 의료기관에서 중첩된 차별을 경험하고 있어, 자신의 성정체성을 수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치료를 받는 고통이라든가 통증이라든가 그중에 하나는 이제 저 같은 경우는 임신에 대해서 포기를 해야 했어요. 자궁을 적출을 했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이제 논 바이너리 트랜스젠더인데 그게 고등학교 때는 되게 많이 고민을 했어요. FTM인가 근데 FTM이라고 한다고 해도 수술해 줄 의사가 국내에는 없을거라는 거잖아요. 일단은 없을 거라는 거지 그런 부분은 이제 받아들여야 되는 부분이고 이제 아쉬운 부분들이 조금씩은 항상 있는 것 같아요. (참여자22)

마지막으로 본 연구의 연구참여자로 포함하지는 못했으나, 장애를 가진 이주민의 경험에 관해 고찰해 볼 수 있다. 이주민은 일자리나 교육의 기회를 얻기 위해 국경을 넘어 다른 국가로 이주한 이들을 일컬으며 결혼이주민, 난민, 유학생, 해외 동포 등을 지칭한다 [89]. 이들은 새로운 문화권으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모국의 문화와 새로운 문화 간의 부적응으로 심각한 스트레스를 경험하는데, 이에 더하여 장애가 있는 이주민은 비장애인에 비해 사회적 지원을 받거나 체류 자격을 유지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90]. 이주민에게 제공되는 지원은 ‘이주’ 및 ‘다문화’와 관련한 요인에 초점을 맞춰 장애 특성을 고려한 지원이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91]. 또한 이주민은 노동력을 기대하여 체류 자격을 부여받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장애가 있는 이주민은 생산성이 낮고 사회적 자원이 지나치게 소모될 것이라는 고정관념으로 인해 체류 자격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기 쉽다. 특히 일하다 다치거나 병이 들어 장애를 가지게 된 이주민들은, 노동력 상실로 인해 법적 체류 자격을 유지하지 못해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존재 자체가 드러나지 못하며 관련 연구가 진행되기도 어렵다 [92].

법적으로 장애인 등록을 해야만 장애인을 위한 복지혜택이 주어지는 한국 사회에서, 장애이주민은 오랜 기간 장애 등록 자체가 불가했다. 1989년 장애인 등록제가 도입된 이후 20년 넘게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민은 장애인 등록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2012년 「장애인복지법」 제32조의2(재외동포 및 외국인의 장애인 등록)가 신설되고 난 이후에야 등록을 할 수 있었는데, 이 법에서 조차도 장애인 등록이 가능한 대상자는 재외동포, 영주, 결혼이민, 난민 인정자로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고용허가제를 통해한국에 와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나 H-2 비자로 한국에서 일하고 있어 거소신고가 불가능한 재외동포의 경우 여전히 장애 등록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장애인 등록이 법적으로 허용된 이주민 집단의 경우에도 진단과 검사에 드는 비용에 부담을 느끼거나, 등록 이후 받게 되는 복지혜택의 제 한으로 인해 등록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장애인 등록을 한 모든 이주민이 받을 수 있는 장애인 복지 서비스는 장애인 자동차 표지 발급, 공영주차장을 포함한 각종 공공시설 입장료 감면, 전기요금이나 도시가스요금 할인 등에 불과하며, 난민인정자를 제외한 장애이주민들은 경제적인 지원으로부터 배제된다. 재외동포, 영주권자, 결혼이주민은 장애등록을 하더라도 장애인 연금이나 수당, 장애아동 보육료 지원,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93].

이주와 인권연구소 · 이주민과 함께가 2023년 진행한 연구 보고서에는 이주민이면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한 여러 사례가 보고되어 있다 [94]. 한 중국 동포 여성의 손주는 9세로 뇌병변 장애가 있는데, 하루 종일 누워있어야만 했다. 재활치료를 위해 센터에 가고 싶지만 휠체어와 같은 이동보조기기가 없어 쉽지 않고, 자꾸 탈골되는 아이를 업고 다닐 수도 없다. 여성은 “장애인 등록을 해도 활동지원 서비스를 못 받으면서요. 그러면 우리에게 아무 소용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또한 지체장애가 있는 우즈베키스탄 국적 고려인 동포 47세 여성은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가족의 도움을 받고 있는데, 장애인 등록을 위한 진단 검사비가 높아 주저하고 있었다. “그것까지 도와달라고 하지 못해 장애인 등록을 못하고 있다”는 여성의 상황은 이주민의 장애인 등록이 낮은 이유를 대변한다.

한국에서 진행된 이주민 장애인의 교차성 연구는 장애 이주아동, 혹은 결혼이주여성과 관련하여 주로 진행되었다. 먼저 장애 이주아동과 관련하여 이진혜는 대한민국의 장애 이주아동의 현황과 교육권 보장에 관해 논하였다 [91]. 연구자는 국내법 및 국제법에 의해 장애 이주아동에게 교육권이 보장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장애 이주아동들이 장애인 진단을 위한 비용의 부담, 치료 및 교육 과정에서 소통의 어려움, 서류 준비의 복잡함으로 인해 장애를 인정받고 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 배치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게다가 특수학급이나 특수학교에 진학하더라도 이주 배경 아동의 특성에 대한 인식 및 전문성이 부족해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장애아동들이 치료의 적기를 놓쳐 장애가 더욱 악화되는 등의 문제를 겪었다. 라이베리아 국적 여성의 자녀는 10세로 병원에서 경도 지적장애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학교 담당교사는 “엄마가 외국인이라서 그냥 한국어가 느린 것” 이라고 판단해 자녀를 특수학급이 아니라 한국어 학급으로 보내려고 하였다 [94]. 이로 인해 여성은 자녀의 치료 시기를 놓칠까 염려했다.

국내에서 결혼이주여성에 관한 연구는 비장애 결혼이주여성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일부 장애아동이 있는 이주여성의 양육 경험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가 이루어졌다. 결혼이주여성의 경험에 초점을 맞춘 한 연구는 청각장애인 결혼이주여성의 한국생활 적응 과정을 탐구한 바 있다 [90]. 연구참여자들은 급격한 거주 환경의 변화에 더해, 청각장애로 인해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고 언어를 습득하는 데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했다. 이는 가정 내에서 결혼이주여성이 겪는 혼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 이어, 제도적으로 다문화지원서비스가 지원대상을 ‘다문화’ 집단으로만 한정하는 현실에서 장애 특성에 맞는 지원은 극히 드물기에 나타나는 복합적인 결과였다. 게다가 많은 결혼이주여성이 가정 내 권력이 불균형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주와 장애에 더해 젠더와 관련된 다중적 어려움에 놓여 있다고 판단된다.

이처럼 장애와 더불어 또 다른 소수자성을 함께 지닌 집단은 교육, 고용, 가족, 건강, 사회참여 등 여러 영역에 걸쳐 복합적이고 연쇄적인 차별에 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교차성은 충분히 가시화되지 못하며 장애와 교차하는 모든 분야에서 연구가 부족한 상황이다. 게다가 교차성을 지닌 집단이 가지게 되는 고유한 특성이 연구 주제로 다루어질 필요가 있으나 이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예를 들어, 장애여성 연구의 경우 삶의 질이나 생활 만족도를 중심으로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이는 비장애인이나 다른 집단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주제로, 장애와 젠더의 이중적 특성을 반영한 고유한 주제라 이야기하기 어렵다 [95]. 장애이주민에 관한 연구의 경우 결혼이주여성 및 그들의 자녀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난민이나 이주노동자 등 다른 유형의 이주민의 장애에 관해서는 충분히 고려되지 못한 경향이 있으며, 마찬가지로 퀴어인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 또한 극히 드물어 찾아보기 어려웠다. 따라서 개별 정체성을 향한 차별의 합이 아니라 정체성이 중복되고 중첩되었을 때 발생하는 복잡하고 독특한 양상에 대한 고찰과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논점 6. 평생에 걸친 차별의 축적과 영향: 생애과정 관점

생애과정 관점은 인간의 삶을 연구할 때 개인이 경험해 온 수많은 생애사의 영향과 축적을 고려하는 학문적 접근법이다 [96]. 생애과정 관점의 주요한 특징은 시간성으로, 생애과정 관점에서 이루어진 연구는 개인의 생애주기 및 세대에 걸친 장기적인 요인을 주요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97]. 또한 인간의 삶을 분석하기 위해 개인의 특성이나 행동에 더하여 구조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두루 고려한다는 점에서 개인을 둘러싼 다층적인 맥락을 이해하는 데 효과적인 접근법으로 평가받는다 [98].

보건 의료 분야에서는 생애과정 접근을 통해 질환의 생성과 진행에 작동하는 생물학적, 행동학적, 사회심리학적 경로를 밝히는 역학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생애과정 역학 연구가 시작되던 초기에는 위험요인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작동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태아기나 영유아기 등 다른 시기에 비해 생물학적 위험 및 사회적 전환의 노출이 더 불리한 영향을 미치는 민감한 시기를 강조하는 결정적 시기 모형(critical period model)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점차 특정 시기에 일어난 위험요인 노출 그 자체보다 장기적인 위험요인의 축적 및 다양한 요인 간의 상호작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으며, 이후에는 이러한 지적을 반영하여 축적 모형(accumulation model)이 발전했다 [96].

생애과정 관점의 건강 연구는 특정 시기, 특히 태내기나 아동기에 경험한 빈곤, 전쟁, 기근, 질환 등이 건강에 미친 장기적인 영향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 Pesonen et al. 의 연구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99]. 연구자들은 193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 핀란드와 소련 간 일어났던 겨울전쟁을 배경으로 아동기의 트라우마 경험의 장기적인 영향을 논하였다. 전쟁 당시 수만 명에 달하는 핀란드의 아동들은 스웨덴이나 덴마크 등 인근 국가 친인척에게 보내지거나 아버지의 군복무로 인해 부모와의 분리를 경험해야 했다. 이들이 노년기에 접어든 후 조사한 결과, 부모와 떨어져 지내지 않았던 사람들에 비해 높은 우울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본 연구에서, 차별이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부터 축적되어 성인기 삶의 질과 건강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사례 중 하나는 화장실 이용의 경험이었다. 참여자5는 어린 시절 다리 보조기를 착용하였기 때문에 화장실에 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구술했다. 그녀는 화장실에 가지 않기 위해 수분 섭취를 최소화하는 식습관을 유지해 왔고, 수분 섭취의 제약과 불균형한 식단이 현재의 건강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언급했다. 참여자25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야만 화장실에 갈 수 있었기 때문에 배뇨를 참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40대가 된 지금까지도 방광염에 자주 시달리고 있었다. 참여자5와 참여자25의 경험은 배뇨와 배변을 참는 행동이 축적되어 성인기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보여준다.

어릴 때부터 국을 잘 안 먹는 게 버릇이 됐어요. 반찬도 멸치볶음, 마른반찬 이런 것만 먹고. 어릴 때 섭취한 영양이 나중에 커서도 영향을 준다고 하잖아요. 그때 잘 안 먹은 게 지금도 영향을 주는 것 같아. 가끔 몸이 막 붓거든요. 별명이 피오나 공주에요. 얼굴이 부었을 때랑 안 부었을 때랑 차이가 커서. (참여자5)
저는 어릴 때부터 너무 화장실을 많이 참아버릇해서 막 엄마한테 오줌 마렵다는 말을 못 해봤고. 엄마가 신경질 내고 막 하니까 참다 참다 못 참으면 그때 말하고. 욕 한 번 얻어먹고 오줌 싸고 막 이런 세월을 보냈단 말이에요. 방광이 되게 안 좋아요. 저는 신호가 오면 빨리 가야 돼요. 잘 못 참아요. 그리고 항상 염증이 막 있고 약을 먹어야 되고. (참여자25)

생애과정 속에서의 건강 영향은 건강 행동뿐 아니라 성인기 관계로도 이어졌다. 지지적이지 않은 부모나 보호자로부터 화장실 이용에 적절히 도움을 받아오지 못한 경우 성인이 되어서도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참여자25는 어린 시절 화장실을 이용할 때마다 어머니에게 구박을 받았다고 말했으며, 이 경험은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상흔으로 남아있었다. 성인이 된 후 어머니에게 이러한 감정을 토로하고 사과를 받고자 했지만, 어머니는 “잘못한 게 없다. 나는 할 만큼 했다”고 말했고, 이후로 참여자25는 어머니와의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어려웠다.

늘 엄마한테 눈치를 봐야 했으니까. 엄마는 저를 늘 구박을 하셨으니까요. ‘엄마, 화장실 가고 싶어.’ 그러면 그 한탄하시고 막 그렇잖아요.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막 이런 말들이 레퍼토리가 있거든요. … 엄마한테는 저는 좀 상처가 많아요. 엄마는 저를 항상 짐덩이로 취급을 하셨어요. 앙금이 아직도 있어요. 엄마한테도 사과를 받고 싶었는데 엄마는 저한테 “잘못한 게 없다. 나는 할 만큼 했다”고 말씀하셨어요. (참여자25)

생애과정 관점에서 장애인의 삶을 바라본다는 것은 이처럼 다양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여러 조건과 경험의 장기적인 축적과 그로 인한 영향을 동시에 바라보는 일이다. 능력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장애인의 삶을 생애과정 관점으로 바라볼 때, 최근 대두된 ‘존 헨리이즘(John Henryism)’의 논의는 특히 유용하다.

존 헨리이즘은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엄청난 개인적 분투를 통해 자수성가하였으나 일찍 여러 질병을 얻어 사망한 전설적인 미국의 흑인 John Henry Martin에게서 나온 명칭으로, 사회적 차별과 같은 스트레스에 장기간 노출될 때 대처하는 전략을 일컫는 개념이다. 이는 James에 의해 처음 고안되었으며, 미국 사회에서 인종 차별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을 경험하는 흑인이 이를 극복하기 위해 더 큰 노력을 들이고 자신을 소진할 때 심혈관계 질환 및 정신질환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은 현상을 드러내며 사용되었다 [100]. 이는 일상적 차별을 경험하는 개인이 그 부조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취하게 되는 성취 지향적인 태도가 단기적으로 좋은 성과를 이루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어도 장기적인 생애과정에서는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피로를 유발하여 다양한 건강 문제를 초래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열악한 환경에 처한 개인이 자신의 노력으로 높은 지위와 부를 얻었을 때 사회경제적 불평등에서 벗어났다고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존 헨리이즘은 부조리한 구조를 개인의 노력만으로 극복해 내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성공 신화의 이면에서 당사자가 치러야 했던 삶의 비용을 지적하고 있다.

존 헨리이즘은 미국 사회 흑인 집단의 경험을 중심으로 발전된 개념이지만 일상적인 차별로 인해 생애 전반에 장기적 스트레스 상황을 경험하는 다양한 집단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며, 장애인의 경험도 이에 비추어 살펴볼 수 있다. Harrison & Stuifbergen은 어린 시절 소아마비로 인해 장애를 얻었던 41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생애과정 관점의 연구를 진행하여 장애 여성의 성취 경험과 건강에 관해 비슷한 현상을 확인하였다 [101]. 연구참여자들은 아동기에 소아마비를 겪으며 갑작스러운 몸의 변화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청소년기를 거쳐 초기 성인기까지 점차 자신의 몸에 적응하고 이를 통제하는 데 능숙해졌다고 밝혔다. 이 경험을 통해 그들은 독립심과 자신감을 얻었으며 열심히 노력함으로써 장애와 관련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고,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신을 밀어붙였다. 특히 아동기에 장애를 이유로 ‘백치’나 ‘물건’처럼 취급된 기억이 있는 이들은 다시 그러한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 장시간 노동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않는 등 몸을 혹사하였다. 그 덕분에 중장년기 이후에 가정이나 직장에서 높은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으나, 점점 정신건강의 문제를 경험하거나 신체적 피로가 축적되며 고혈압, 당뇨병, 폐렴과 같은 질환을 앓으면서 이전과 같은 수준의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존 헨리이즘의 맥락에서, 본 참여자20과 참여자7의 일화는 장애인으로 성취에 대한 추구가 생애과정 속에서 건강을 해치는 모습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저신장장애를 가진 참여자20은 어린 시절부터 ‘장애가 있을수록 남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당부를 들으며 성장했다. 예술가로서의 재능이 있던 학창 시절부터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활동하며 예술대학교를 졸업하였고 성인이 된 후 연극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장애를 가진 배우가 가진 신체의 고유성이 존중받지 못하는 공간에서 참여자20은 자신의 신체의 역량을 넘어서는 요구들도 수행해야만 했다. 연출가가 어느 정도의 기준을 요구할 때 무리해서 몸을 써야 할 때도 있었다. 기준을 만족하지 못할 때 자괴감이 컸으므로 몸을 혹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결국 30대 초반에 척추협착을 진단받고 몇 해간 연극배우로서의 활동을 중단하였다. 참여자20은 당시를 돌아보며 “비장애인을 따라가다가 다친 꼴”이라며, “크고 건장한 애들이랑 경쟁하기 위해 무리하게 몸을 혹사시킨 것”이 건강을 악화한 원인이었다고 회고했다.

내가 그거를 수행할 수 없을 때 제 스스로 자괴감도 들고 또 배우로서의 이제 뭔가 제가 능력이 있었는데 그 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막 느끼고. 그러니까 제가 다치고 나서 느꼈던 거는 장애인이 비장애인 따라가려다가 다친 꼴이 아닌가? 계속 그런 생각이. 장애 비장애를 떠나서 저보다 신체가 크고 건장한 애들이랑 경쟁하기 위해 너무 또 무리하며 내 몸을 쓰지 않았나 혹사시키지 않았나. (참여자20)

청각장애를 가진 참여자7 역시 어린 시절부터 “장애를 더 노력해야겠다는 발판”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을 좌우명으로 삼으며 성장했다. 학창 시절을 보내고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 장애로 인해 갈등이 생기거나 문제의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도 자신의 역량으로 “더 노력해서”, 혹은 가족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삶의 문제에 대응하는 참여자7의 태도는 전문가 자격증의 획득 등 뛰어난 삶의 성취로 이어졌지만 동시에 건강에도 영향을 주었다. 성취를 통해 인정을 받는 경험은 장애를 가지고 더 잘해야 한다는 다짐으로 이어졌고, 회사에 입사한 후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과로와 야근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로 인해 손목 통증, 대장염, 안구건조증 등 다양한 건강 문제를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전화를 하면서 빨리 파악을 하고 빨리 캐치하고 아무래도 진행이 조금 빨라. 그런데 나는 전화를 못 하잖아. 파악하려면 업체랑 카톡을 하면 되는데 아무래도 전화가 빠르지. 업무 처리 속도가 늦어지는 것 같아서 그래서 야근을 좀 많이 한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야근 많이 하니까 몸도 힘들고 안구건조증도 오고, 모니터 되게 많이 보고 그러니까 피곤하고 그런 것 같아. (참여자7)

앞선 사례는 장애 차별과 장애인 건강 간의 복잡한 연관관계에 관한 주요한 논점을 제시한다. 장애인이 열등하다고 치부하는 차별적인 시선은 장애인이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고 과도하게 사회의 정상성에 부합하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한다. 성취를 지향하는 성향과 태도는 긍정적으로 여겨지곤 하지만 사회적 불평등과 결합할 때 장애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못하고 소진을 반복하도록 만들 수 있다. 게다가 이와 같은 작용이 단발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애과정 전반에서 반복된다는 점에서 고정된 시점을 기준으로 하지 않는 생애과정 관점의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장애인의 생애 경험, 그 중에서도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의 경험에 관한 장기적인 데이터 축적과 연구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논점 7. 정당한 권리의 포기와 정상성 모방: 내면화된 비장애중심주의

Jones는 미국공중보건학회지에 출판한 논문에서 다양한 층위의 차별을 설명하기 위해 정원사의 비유를 사용한다 [102]. 정원에 두 개의 화분이 있었는데, 하나에는 새로 흙을 구해서 거름이 가득했고 또 다른 화분에는 영양분이 없는 오래된 흙이 담겨 있었다. 붉은 꽃을 좋아했던 정원사는 전자에 붉은색 꽃 씨앗을, 후자에 분홍색 꽃 씨앗을 심었다. 시간이 지나자, 붉은색 꽃은 건강하고 아름답게 피어났지만 분홍색 꽃은 시들시들하고 윤기 없게 피어났다. 그것을 보고 정원사는 말했다. “역시 아름다운 붉은색 꽃을 거름이 가득한 화분에 심기를 잘했어.” 이는 구조적 차별에 대한 우화이다.

그런데, 정원사가 아니라, 꽃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면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분홍색 꽃이 바라보는 세상에서 자신과 같은 화분에서 피어난 분홍색 꽃은 초라하고 연약하고, 옆 화분의 붉은색 꽃은 화려하고 강건하다. 그때 분홍색 꽃이 번식할 수 있도록 수술의 꽃가루를 암술 머리에 옮겨주는 돕는 벌이 다가온다. 분홍색 꽃은 벌에게 말한다. “안돼요. 나는 분홍색 꽃의 꽃가루를 원하지 않아요. 아름다운 붉은색 꽃이 좋아요.” 분홍색 꽃은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가치를 평가절하한다. 분홍색 꽃은 붉은색을 성공과 우월함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부정한다. 이것이 내면화된 차별(Internalized discrimination)이다.

불균등한 권력으로 인한 불평등이 오랫동안 누적되면서, 권력에서 배제된 사회적 소수자들은 기득권 집단의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게 된다. 유색인종은 열등하고 야만적이라는 백인 중심의 이데올로기를 흑인이 받아들이는 내면화된 인종주의(Internalized racism), 여성이 열등하고 남성이 우월하다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여성이 수용하는 내면화된 성차별주의(Internalized sexism)가 그 예시이다. 마찬가지로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이성애중심 사회에서는 내면화된 동성애 혐오(Internalized homophobia)가 동성애자의 삶을 옥죄인다. 위의 우화에서 볼 수 있듯이 내면화된 차별로 인해 사회적 소수자들은 지배적 사회규범을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열등한 존재로 생각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거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일을 포기하게 된다. 내면화된 차별이 개인의 심리적인 과정으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사실은 구조적 맥락에 기인한 사회적 현상이라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103].

장애인도 다르지 않다.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설계된 사회에서 장애인은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없는 무능력한 존재로 표현되고 취급된다. 일상에서 매 순간 편견과 차별에 직면한 장애인은 내면화된 비장애중심주의(Internalized ableism)를 체화한다. 비장애중심주의가 표준인 사회에서 그 정상성에 저항하는 시도들이 일어나지만, 많은 장애인은 사회가 정의한 정상성을 긍정하고 수용한다. 장애인이 그러한 강요된 정상성을 내면에 축적할수록 장애인 집단이 지닌 특성을 다양성으로 인정하기보다는 열등함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104].

본 참여자31과 참여자28의 구술에는 장애인의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한 시대적 제약으로 인해 내면화한 비장애중심주의가 드러난다. 장애인 시민권 보장을 위한 기본적 제도가 부재한 시대에 그들은 장애인으로서 비장애중심주의가 부여한 편견을 거부할 수 없었기에 스스로에 대해 존중하기도 어려웠고 자신의 가치를 평가절하했다. 제도적 지원 없이 성인이 될 때까지도 일상생활을 위한 모든 도움을 가족으로부터 받아야만 했던 그들은 ‘그냥 그렇게 이러다가 늙어죽는 거다’라고 생각하거나 ‘할 수 없다는 게 너무 딱 박혀 있어 가지고 뭘 하고 싶다, 그런 생각조차를 아예 안 하고’ 살았다고 이야기했다.

미래에 대해서는 이제 그냥 그렇게 이러다가 늙어 죽는 거다. 우리 오빠들은 이제 다 책임져야 된다 이런 거 이제 결혼이나 뭐 이런 거는 꿈에도 상상을 못했고. (참여자31)
연구자: 선생님이 만약 학교를 계속 다니셨어서 대학도 다니시고 하셨다면 뭐를 하셨을 것 같으세요? 어릴 때 꿈은 뭐셨나요?
참여자28: 그런 게 없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할 수 없다는 게 너무 딱 저한테 박혀 있어가지고 뭘 하고 싶다, 그런 생각조차를 아예 안 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집에서 엄마가 도와주시고 하니까 “니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그게 박혀 있으니까.

내면화된 비장애중심주의는 다른 소수자들의 내면화된 차별과 마찬가지로 장애인을 열등한 존재로 여기고 스스로의 가치를 절하하는 태도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오히려 비장애중심주의에 자신을 맞추어 적응하려는 태도로 표출하려는 태도로 드러나기도 한다. Campbell은 이러한 현상에 주목하며 내면화된 비장애중심주의의 두 가지 핵심 요소를 제시한다 [105]. 첫째는 장애인 공동체와 거리를 두는 것이다. 내면화된 차별은 평가절하된 장애 정체성을 정당화하고, 다른 장애인과 집단의식을 형성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렇게 공동체로부터 분리된 장애인은 장애를 향한 부정적인 평가가 다른 장애인에게 적용될 뿐 자신은 그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인식할 수 있다. 둘째는 사회가 정의한 정상성을 모방하는 것이다. 정상성 모방은 장애를 다양성으로 인정하기보다 없는 것처럼 대하고, 장애인이 비장애인처럼 행동하기를 바라는 사회에서 강하게 이루어진다. 비장애인의 기준에 부합하려는 시도는 억압적인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기 보호의 한 형태일 수도 있지만, 장애인 당사자가 자신의 장애에 거부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감정은 Kuusisto가 저술한 자서전의 한 구절에서 잘 드러나는데, 그는 자신이 시각장애인임을 알면서도 이를 부정하도록 가르침 받아 흰 지팡이 없이 걷고 생활하는 등 정상성을 수행하려 노력했지만, 장애인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수치심을 느끼고 좌절했다고 묘사하였다 [106]. 정상성의 수행은 비장애인 중심적 사회에서 안식처를 마련해주기보다 장애인의 낙인과 소외를 지속시킨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똑같은 능력이면 당연히 장애가 없는 사람한테 맡기는 게 맞겠죠. 왜냐하면 청각장애 같은 경우에는, 예를 들어서 뭘 해달라 하는 거를 놓칠 수도 있으니까. 아니면 돌발 상황에 대처를 잘 못하거나 그럴 수도 있으니까 똑같은 능력이라면 당연히 장애가 없는 사람한테 맡기겠죠. 그런데 제가 이런 차원에서 제가 능력이 더 좋다는 거를 보여주고 싶기 때문에 좀 더 능력을 많이 키우려고 하는 것 같아요, 최대한. (참여자9)
저신장 모임이라고 있거든요. LPK 모임이라고 있는데 이제 한 스무 살 중반 정도의 뭔가 제 장애에 대해서 그런 게 궁금해 가지고 거기를 한번 갔었어요. 그 모임을 일 년에 한번씩 모임을 하는데 딱 갔었는데 저와 똑같은 사람들이 수십 명이 있으니까 처음 보는 광경에 제 스스로 놀라서 그냥 원래 그게 행사가 이제 밤에 자고 다음 아침까지 있었는데 그냥 오후에 하고 밤 하기 전에 이제 도망치듯이 나왔죠. (참여자20)

Kuusisto가 지적한 정상성 모방은 “똑같은 능력이면 당연히 장애가 없는 사람에게 맡기는 게 맞겠죠”라는 참여자9의 서술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106]. 그는 장애가 있는 사람이 능력을 덜 인정받는 것이 당연한 사회에서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를 압박하며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단순히 능력 개발의 차원을 넘어, 장애를 부정하고 비장애인의 기준에 스스로를 맞추려는 내면화된 비장애중심주의의 한 예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은 개인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가 강요한 적응 전략임을 시사한다. 참여자20의 사례는 장애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시선에 영향을 받아 장애인이 다른 장애인들과의 연대를 피하고, 자신의 장애를 평가절하하는 내면화된 비장애중심주의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그는 장애정체성을 받아들이기 이전, 장애 공동체와 만나며 자신의 장애를 직접 마주한 순간이 얼마나 불편한 순간이었는지를 묘사하였다. 그의 서술에서 장애를 부정하고 비장애인의 세계에 적응하려는 태도가 내면화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비장애인중심주의의 내면화는 장애의 수용을 방해하고, 결과적으로 장애인이 사회와 자신에게서 더욱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차별의 내면화는 단편적인 사건에 머무르지 않고 장기적으로 이어진다. 내면화된 인종주의와 관련하여, Banks는 유색인종은 인종에 관한 지배적인 이념에 면역을 가지기 어려우며, 생애주기 전반에서 인종주의적 편견에 노출되어 차별의 내면화를 강화할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107]. 마찬가지로, 성장 과정에서 비장애중심주의적 관점을 내면화한 장애인은 시간이 지난 후에도 장애인이 경험하는 사회적 배제와 소외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기 쉽다. 사회구조적 맥락에 기인한 어려움에 대처하지 못했을 때, 자신의 부족함을 원인으로 인식하거나 ’정상적인’ 삶을 모방하고자 애쓰게 되고 이는 연쇄적으로 이후에 또 다른 기회와 경험으로 이어지는 문을 좁히거나 전반적인 삶의 질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논점 8. ‘행복’한 중증장애인의 역설: 자원으로서의 장애

본 연구에서 검토한 차별 연구와 참여자들의 사례는 차별의 상황에 부당하게 놓여 개인적, 사회적 제약을 경험하는 개인의 경험을 다루었다. 대다수 연구에서는 차별로 인해 장애인의 삶이 어떻게 제한되고 몸이 어떻게 상하게 되는지 집중해왔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역사 속에서 숱하게 반복되어 온 그 부조리한 상황으로 인해 상처받는 존재인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를 만들어 온 사람들”이다 [8]. 그러나 한국에서 진행된 기존 연구에서 차별의 상황에서도 능동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는 행위 주체로서 장애인의 모습은 발견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맥락을 두고서 올리버 색스는 “결함에 너무 많은 주의를 기울이며, 변화하지 않는, 상실되지 않고 남아있는 능력을 간과”하는 점을 비판한 바 있다 [108].

차별의 상황에서도 상실되지 않고 남아있는 장애인의 힘과 경험은 삶의 핵심적 자원으로 작동할 수 있고, 이는 차별과 일상적으로 맞닥뜨리면서도 장애인의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어 나가도록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장애인의 노화 경험을 다룬 연구들에 따르면, 장애인은 신체 기능의 손실, 질병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하는 등의 경험을 이미 가지고 있으며 기능 제약을 보완할 수 있는 다양한 전략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삶의 추가적인 역경을 좀 더 잘 받아들이게 된다 [109, 110, 111]. 이는 신체 기능의 손실이나 의존이 삶의 결핍이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자원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장애인의 삶에 존재하는 ‘자원으로서의 장애’의 경험은 ‘장애의 역설(disability paradox)’이라는 흥미로운 현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112]. 중증의 장애인이 몸과 마음의 균형으로 높은 삶의 질을 경험하게 된다는 ‘장애의 역설’ 현상은 장애인이 장애라는 역경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스트레스 상황을 더 잘 분석하고 대응 방안을 구조화하는 역량강화 과정을 통해 일어난다.

Drum et al. 은 장애인이 자신의 건강상태를 비장애인보다 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113]. 연구에 따르면 주관적 건강상태가 좋다고 응답한 장애인이 30일 이내에 경험한 불건강 일수는 평균 4.5일이었는데, 이는 주관적 건강상태가 좋다고 응답한 비장애인의 0.8일보다 훨씬 높은 수치였다. 즉 장애인은 본인의 주관적 건강상태를 실제보다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장애의 역설’은 장애인이 건강상태가 낮아 전반적인 삶의 질이 낮을 것이라는 예측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역설’적인 현상을 설명한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주요한 이론 중 하나는 Spranger & Schwartz의 ‘반응 변화 (response shift)’ 이론이다 [114]. ‘반응 변화’ 이론은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이나 만성질환을 경험하는 환자들의 내부 표준, 가치, 개념화의 변화로 인하여 건강이나 삶의 질에 대한 자기 평가의 의미가 변화하여 건강 관련 삶의 질을 좀 더 높게 평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장애인 역시 장애의 경험이 축적되며, 건강에 관하여 표준, 가치, 개념화의 변화로 자신의 삶의 질을 더욱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현상을 설명하고자 할 때 장애인은 언제나 ‘불건강한 존재’로 여겨져 왔기에 자신의 건강상태를 건강하게 ‘보고’하려는 경향성이 나타날 수 있으며, 선천적 장애인과 후천적 장애인이 장애와 건강상태를 받아들이는 메커니즘이 상이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현상을 장애인이 자신의 불건강을 ‘인지’ 하지 못하고 주관적으로 건강을 과대평가하는 것이라고 해석해야 할까?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노인의 건강 인식과 건강 문제의 불일치를 다룬 연구에서 자신의 건강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노인이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더 오래 생존한다고 보고 되었다 [115]. 이렇게 노인과 만성질환자 등이 경험하는 ‘반응 변화’ 현상은 단기간에 그 건강 영향을 측정할 수 없으며 종단 데이터로 삶의 질에서의 항상성을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116]. 차별의 건강 영향과 ‘반응 변화’ 에 따른 건강 유지 등은 추후 장애인 건강에 관한 종단 데이터로 검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장애의 역설’ 현상에서 드러나듯이 장애인은 오랜 시간 장애로 인한 어려움에 대처하며 살아왔기에 건강이 악화되어 삶의 영역이 축소된 상황에서도 자신의 속도에 맞추어 삶의 균형을 찾아 나가며, 장애 경험을 토대로 하여 가용한 에너지와 자원을 재조정하는 전략들을 가지고 있다. 장애 네트워크로부터 오는 지지, 장애에 관한 사회적 관점, 장애인이 다양한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사회적 자원과 기회들이 결합할 때 가시적·비가시적 차별의 경험 속에서도 장애인은 건강한 행위 주체로 존재할 수 있다. 즉 자신의 통제 하에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구성하는 ‘자기 규제적 의존성(self-regulating dependency)’을 가진 주체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117].

앞서 생애사 사례로 소개한 참여자31과 참여자34의 경험은,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한국 사회의 차별 속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개척하고 장애 공동체와 결합한 경험을 보여준다. 즉 차별 속에서도 고유하고 독특한 자신만의 삶의 양태를 만들어 나간 것이다. 어머니의 돌봄을 받으며 오랜 재가 생활을 하다가 어머니의 사망 후 시설에서 10여 년 동안 머물러야 했던 참여자34는, 1970-80년대 장애인의 사회적 권리가 심각한 제약을 받던 상황에서도 체념 상태에 머물지 않고 늘 “혼자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해 왔다고 말했다. 결국 마흔 살이 넘어서야 혼자 사는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혼자 사는 삶에 만족하지 않고, 2000년대 초반 여전히 이동의 제약이 있던 상황에서 참여자34는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기 위해 주체적인 노력을 시작한다. 거주하던 평택에서 서울까지, 휠체어를 타고 이동할 방법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도 버스를 타기 위해 시도하고,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개인적인 전략을 통해 이동과 만남의 제약을 돌파해 나갔다.

한번 버스를 탈 수 있을까 그래서 버스를 한번 타려고 시도를 해봤었어요. 버스 기사한테 서울을 가야 하는데 태워줄 수 있는지. 버스 기사는 태워주는 건 문제가 안 되는데 그 다음에 서울에서는 어떻게 할 거냐 나한테. 그랬더니 아니, 그거는 제가 알아서 할 거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시고 태워 주시기만 하면 된다고. (...) 허리가 아파서 도와줄 수 없다고 저한테 정중하게 거절하는 그런 케이스가 있어요. 그때 방법을 달리한 게 뭐였냐면 버스 탈 손님 가운데 목적지가 같은 젊은 남자들 그런 사람한테 부탁을 해요. (참여자34)

장애인은 차별을 마주하면서 어떻게 대응할지 방법을 찾아 자신의 일상을 전략적으로 구성하는 동시에, 타인들과 상호작용하며 자기 신체와 조응하지 않는 환경을 재구성하며 살아내는 방식을 함께 고안해 나간다. Dokumaci는 이를 ‘사람-어포던스(people as affordance)’라고 지칭하며, 타인의 돌봄을 어포던스로 활용해 장애인 당사자의 행동 가능성을 확장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118]. 기존의 ‘어포던스(affordance)’는 특정 환경에서 개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정의하는 환경과의 상호작용 가능성을 의미한다. 장애인은 개인적 전략을 활용하기 힘든 경우 가족이나 친구, 동료의 도움으로 어포던스를 주고받으며 새로운 형태의 친밀함과 돌봄을 형성해 나간다. 즉 장애인은 자신의 환경에서 연대를 통해 더 나은 접근성을 창출하고,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연대와 친밀감을 구축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참여자31의 사례는 ‘사람-어포던스’를 통해 삶을 재구성하는 방식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참여자31은 초등학교 졸업 이후 이동의 어려움으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참여자31은 재가 생활을 하다가 성인이 된 후 한복집에 취업하여 처음으로 장애를 가진 여성들을 만난다. 장애여성들과 함께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어려움과 삶의 지혜들을 나누고, 장애정체성으로 연결된 단단한 장애 공동체 안에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2000년대 이후 장애인 콜택시가 운행을 시작하고, 지역사회에 장애인 편의시설이 확대된 현재에도 장애 공동체는 참여자31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존재가 되고 있다. 화장실이나 건강 정보를 공유하고,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장소에 대한 개선을 요청해 나가며 참여자31과 장애여성 공동체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활동 범위를 확대하고 삶을 돌파해 나가고 있었다.

그 언니는 같은 동네에 사는데 우리 법동이 화장실 시설이 잘 돼 있어요. 공원마다 막 그 언니가 다 꿰뚫어나갔고 우리는 그 언니가 갈 때마다 다 알아 놨어. 화장실 정보를. 그래서 화장실 시설이 잘 돼 있더라고요. 또 법동이 공원마다 장애인 화장실이 있고 그래서 걱정을 안하고 커피 마음대로 마셔도 돼요. (참여자31)

참여자들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차별을 경험하는 장애인은 사회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존재이지만, 그와 동시에 부당한 대우에 맞서고 동시에 그 조건 속에서 능동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는 주체적인 존재이기도 했다. 그간의 장애인의 차별을 다룬 연구는 주로 차별과 억압의 ‘피해자’로서의 장애인에 대하여 주로 묘사하였다. 그러나 참여자들의 생애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들은 ‘피해자’로 머물러 있지 않으며, 장애를 가지고 살아온 삶의 전략과 장애 공동체와의 연대를 자원으로 삼아 주체적으로 삶을 구성하고 개척해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장애인의 차별을 다룬 연구들이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던 장애인 개인의 주체성과 역량을 차별 연구의 또 다른 중요한 축으로 관찰하고 기록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


결론

지난 30년간 한국에서는 장애인 인권과 관련된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89년 장애인복지법, 2006년 교통약자법, 2008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되었고, 이러한 법들은 장애인의 삶을 가로막고 건강을 악화시키는 차별적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한 법적 및 제도적 토대가 되어 왔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장애인 당사자들이 이끌었던 장애인권운동이 있었고, 그 결과 장애인의 교육, 복지, 주거, 노동 영역 전반에서 차별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장애인 당사자가 인식하는 차별 수준 역시 감소하고 있다. 장애인 실태조사를 분석한 팽은지 외의 연구에 따르면, 2005년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6.1%가 한국 사회에 장애인 차별이 ‘약간 많거나 매우 많다’고 응답했는데, 2020년에는 같은 응답이 62.5%로 나타났다 [10].

장애인 당사자가 느끼는 차별수준이 23.6% 감소했다는 결과는 고무적이지만, 2020년에도 여전히 62.5%의 장애인이 차별이 ‘약간 많거나 매우 많다’고 응답하고 있다는 점은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장애 차별을 처벌하고 시정하기 위한 법과 제도는 분명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장애 차별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차별은 법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명시적이고 직접적인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논문의 시작에서 인용했던 구절처럼 ‘차별은 공기와 같아’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은 삶의 모든 순간을 차별과 함께 살아간다.’ 차별은 장애인의 일상 곳곳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교묘하게 작동한다. 그 차별은 장애인의 교육과 노동과 정치참여를 가로막고 몸을 병리화시키면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만들고, 무엇보다 스스로의 가치를 폄하하고 가능성을 제한하게 만든다.

본 논문에서 저자들은 연구 경험에 기반하여 최신문헌을 검토하고 심층 인터뷰 자료를 활용하고 분석하여, 장애인 차별이 존재하는 다양한 층위와 작동하는 복합적인 방식에 대해 논의하고자 하였다. 저자들이 제시했던 8가지 논점에 대한 탐구가 향후 법, 제도적 차별 철폐를 넘어서 일상에서 공기처럼 존재하는 다양한 차별들을 줄여 나가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그 연구를 통해 보다 많은 인간들이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

Acknowledgments

본 연구는 모두를 위한 과학기술 발전을 돕는 재단법인 브라이언임팩트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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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

국내 장애인 대상 설문조사 중 차별 항목 포함 문항 예시

조사 차별 관련 문항
장애인실태조사 (2020) ㆍ 귀하(응답자의 보호를 받고 있는 장애인)는 지난 1년간 장애로 인하여 다음과 같은 사회적 차별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있으시다면 대처방법은 무엇이었습니까?
ㆍ 현재 귀하의 장애 때문에 본인이 차별을 받고 있다고 어느 정도 느끼십니까?
ㆍ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장애인삶 패널조사 (2023) ㆍ 귀하는 장애인 가정으로 살면서 가족, 친구, 이웃 등 주변으로부터 어느 정도 차별을 받고 있다고 느끼십니까?
ㆍ 어느 부분에서 차별받고 있다고 느끼십니까? (일상생활, 학교, 취업, 지역사회 등)
ㆍ 귀하는 차별을 받았을 때 주로 어떻게 대처하셨습니까?
ㆍ 귀하는 차별에 대해 주로 누구와 상담하십니까? (가족, 친척, 장애인 단체 등)
한국복지패널_장애인 부가조사 (2023) ㆍ 귀하(응답자의 보호를 받고 있는 장애인)는 지난 1년간의 경험을 기준으로,
- 장애 때문에 본인이 차별받고 있다고 느끼는 정도는 어떠합니까?
- 우리나라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귀하(응답자의 보호를 받고 있는 장애인)는 지난 1년간 장애로 인하여 다음과 같은 사회적 차별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있으시다면 대처방법은 무엇이었습니까?
발달장애인 일과 삶 실태조사 (2023) ㆍ OOO님은 이 직장(사업체)에서 장애로 인한 차별, 폭력, 학대 등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ㆍ 보호자님은 OOO님이 차별, 폭력, 학대 등을 경험했을 때 어떻게 대처했습니까?
ㆍ OOO님은 평소 장애로 인한 차별을 어느 정도 경험하고 있습니까? 일자리(사업체)에서의 경험은 제외합니다.
장애인고용패널조사 (2023) ㆍ OOO님은 지난조사(2022년 O월) 이후를 기준으로 이 일자리(직장)에서 채용, 업무, 평가, 임금, 복리후생 등에서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장애가 있어서 차별받은 적이 있다' 응답 시 아래의 추가 질문 있음)
ㆍ “OOO님은 이 일자리(직장)에서 지난 조사(2022년 O월) 이후를 기준으로 장애로 인해 어떠한 차별을 경험하였습니까? 차별받은 분야를 모두 말씀해 주세요. (임금, 근무시간, 부서 배치, 승진, 직장 내 대인관계 관련 차별 등)

표 2.

심층 인터뷰 참여자의 기본 정보

번호 성별 연령대 장애유형/정도 거주지역 인터뷰 시기
참여자1 여성 40대 정신장애/심한장애 서울 2021년
참여자2 남성 40대 정신장애/심한장애 서울 2021년
참여자3 여성 60대 정신장애/심한장애 서울 2021년
참여자4 여성 30대 지체장애/심한장애 경기 2021년
참여자5 여성 50대 지체장애/심한장애 인천 2021년
참여자6 남성 40대 지체장애/심한장애 서울 2021년
참여자7 여성 30대 청각장애/심한장애 인천 2021년
참여자8 남성 50대 지체장애/심한장애 서울 2022년
참여자9 여성 30대 청각장애/심한장애 서울 2022년
참여자10 여성 30대 지체장애/심한장애 서울 2022년
참여자11 남성 40대 시각장애/심한장애 서울 2022년
참여자12 여성 30대 지체장애/심한장애 서울 2022년
참여자13 남성 30대 지체장애/심한장애 경기 2022년
참여자14 여성 40대 뇌병변장애/심한장애 서울 2022년
참여자15 남성 40대 지체장애/심한장애 서울 2022년
참여자16 여성 30대 청각장애/심한장애 강원 2022년
참여자17 여성 40대 지체장애/심한장애 서울 2022년
참여자18 남성 40대 시각장애/심한장애 서울 2022년
참여자19 여성 40대 시각장애/심한장애 서울 2022년
참여자20 남성 40대 지체장애/심하지않은장애 서울 2022년
참여자21 남성 40대 시각, 신장장애/심한장애 서울 2022년
참여자22 여성 30대 시각, 장루요루/심한장애 서울 2022년
참여자23 여성 40대 뇌병변장애/심한장애 서울 2022년
참여자24 여성 50대 지체장애/심한장애 경기 2023년
참여자25 여성 50대 지체장애/심한장애 전북 2023년
참여자26 여성 30대 지체장애/심한장애 경기 2023년
참여자27 여성 40대 뇌병변장애/심한장애 서울 2023년
참여자28 여성 50대 지체장애/심한장애 대전 2023년
참여자29 여성 40대 지체장애/심한장애 대전 2023년
참여자30 여성 30대 지체장애/심한장애 서울 2023년
참여자31 여성 60대 지체장애/심한장애 대전 2023년
참여자32 남성 40대 지체장애/심한장애 서울 2023년
참여자33 남성 30대 뇌병변장애/심한장애 서울 2023년
참여자34 남성 50대 지체장애/심한장애 대전 2023년